유엔, "기부금 내면 도와주마" 기업후견인 행세

  • 입력 1999년 12월 19일 18시 47분


미국의 석유회사 아모코는 작년 8월 영국의 석유회사 BP와 합병하기 직전 아프리카 앙골라에서 석유 채굴권을 놓고 엑슨 쉐브론 등과 치열하게 경쟁했다. 엑슨과 쉐브론에 비해 기업규모나 자금력에서 뒤진 아모코는 절대 약세였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아모코가 채굴권을 따냈다. 아모코의 뒤에는 유엔이 있었기 때문.

아모코는 97년 유엔이 앙골라의 어부를 지원하는데 80만달러(약 9억원)를 기부했다. 유엔은 이 은혜를 잊지 않고 앙골라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해 아모코의 편을 들었던 것이다.

쉐브론은 작년 카자흐스탄에서 5년간 석유 채굴권을 획득했다. 쉐브론은 카자흐스탄의 경제개발을 위해 유엔이 운영하던 비즈니스센터에 50만달러를 기부한 적이 있다.

이때문에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쉐브론의 석유 채굴권 획득에 유엔의 도움이 컸다고 최근 보도했다.

몇년 전 만해도 유엔이 어떤 기업의 이익을 위해 나선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기업은 유엔을 ‘별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국제기구’로 여겼고 유엔 또한 ‘공정성과 중립성’을 내세워 기업과 가까와지는 것을 꺼렸다.

그러나 최근 들어 유엔이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변했고 동시에 기업 또한 유엔을 달리 보고 있다.

유엔은 자금 조달 창구로 기업을 원하고 있으며 기업은 유엔의 명성을 빌려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손을 맞잡게 된 것이다. 기업은 후진국에 새로 진출할 때 현지에서 활동해온 유엔기관으로부터 각종 정보를 얻거나 해당국 정부 관계자를 소개받는다.

인터넷을 통한 빈곤퇴치운동 ‘넷에이드’를 유엔개발계획(UNDP)과 미국의 시스코시스템즈가 함께 벌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합작’사례. 시스코가 단독으로 이 행사를 벌였다면 세계적인 관심을 끌 수 없었을 것이다. 시스코는 UNDP와 제휴한 덕분에 기업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높였으며 유엔은 자금을 쉽게 확보하게 됐다.

〈이희성기자〉lee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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