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의 90년대 '잃어버린 10년'/왜 실패했나?]

  • 입력 1999년 12월 13일 19시 56분


잃어버린 10년. 일본의 90년대는 그런 세월이었다. 패전의 잿더미에서 일어나 80년대까지 욱일승천의 기세로 질주했으나 90년대 들어 전후(戰後) 최악의 장기불황에서 허우적거렸다. 사회적 불안과 비관도 확산됐다.

일본의 무엇이 잘못됐는가. 일본을 발전 모델로 삼아 달려온 한국에는 어떤 힌트를 주는가.

▼800조엔 허공으로▼

▽일본추락의 궤적〓일본의 90년대는 주가폭락으로 시작됐다.

80년대 후반의 버블(거품경제)이 꺼지면서 90년 1월부터 3월 사이에 닛케이평균주가가 1만엔 가까이 급락했다.

여름부터는 땅값도 급전직하했다. ‘자산붕괴’의 신호탄이었다.

92년부터 본격화한 ‘헤이세이(平成·현재 일본연호)불황’은 95,96년에 잠깐 회복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97,98회계연도에는 사상 처음으로 2년 연속 마이너스성장으로 전락했다. 올들어 경기가 다소 살아나는 듯 했으나 3·4분기에 또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92∼98년 일본의 연평균 실질경제성장률은 1.0%. 같은 기간에 미국은 3%였다.

작년말의 주가 땅값 등 자산가격은 90년의 3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10년 동안 약 800조엔의 자산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80년대 후반 세계 1위였던 일본의 국가경쟁력은 올해 16위로 떨어졌다.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중 17위에 불과하다. 일본정부가 발행한 외화표시 국채의 신용등급은 최상급인 Aaa에서 작년 11월에는 Aa1으로 떨어졌다.

잇따른 경기부양책으로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정부채무잔액은 내년 3월말 사상 처음으로 500조엔을 넘어 국내총생산(GDP)을 웃돌 전망이다.

연간 GDP대비 재정적자비율은 10%를 넘는다.

실업률은 올해 한때 4.9%까지 치솟았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가 매년 폭발적으로 늘었다.

빚을 갚을 수 없어 자기파산을 신청한 사람이 지난해 10만명을 넘었다. 자살자도 매년 급증세다.

▼적자 국채에 의존▼

▽일본은 왜 추락했나〓정부 금융기관 기업은 문제해결을 미루기만 했다. 주가와 땅값이 다시 오를 것이라는 안이한 기대가 지배했다. 정부는 불황의 근본원인에는 손도 대지 못한 채 적자국채에 의존하는 경기부양책을 잇따라 내놓아 재정적자만 늘렸다.

그나마 부양책은 정치권과 관료의 이해(利害)에 따라 구태의연한 공공사업확대에 집중투입됐다.

경제기획청은 작년말 “실패를 솔직히 인정하지 않은 것이 더 큰 실패의 원인이 됐다”고 인정했다.

지도력도 결핍됐다.

정계의 극심한 이합집산으로 내각이 빈번히 바뀌었다.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총리는 8개월, 하타 쓰토무(羽田孜)총리는 2개월 재임했을 뿐이다.

정치권은 근본적 개혁에 소극적이었고 모든 것을 관료들에게 맡겼다.

공공사업은 유력정치인의 지역구에 집중적으로 실시됐다.

정치인과 관료의 잇따른 부패사건은 국민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렸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시대착오적 관료주의의 만연과 관료 및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는 일본을 더욱 곪게 했다.

90년에 일본경제의 사양화를 예측한 저서 ‘해는 다시 진다’로 유명한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빌 에몬트.

그는 최근 일본잡지 기고문에서 “90년대 일본침체에서 부각된 것은 국내정책을 확실히 실행할 능력을 지닌 정당도, 진정한 개혁프로그램이나 방향성을 지닌 지도자도 없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경제평론가 출신의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경제기획청장관은 “일본은 전후(戰後) 관료주도의 재계협조체제에 의한 최적(最適)공업사회를 구축했으나 그 성공에 집착한 나머지 ‘지가(知價)사회’, 즉 정보화사회로 향하는 세계의 조류에서 뒤져 불황 불평 불안의 3중고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일본의 설비투자에서 차지하는 정보화투자 비율은 미국의 3분의 2도 안된다. 소프트웨어 무역수지는 수입이 수출의 100배나 된다.

일본의 가정용 컴퓨터 보급률은 20%로 미국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

도쿄(東京)의 인터넷 집적도는 세계 15위로 1위인 런던의 8분의 1에 불과하다.

도쿄대 요시카와 히로시(吉川洋)교수는 저서 ‘전환기의 일본경제’에서 “정보통신분야를 비롯해 주택 의료 교통 등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새로운 수요창출에 실패한 것이 ‘10년 불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기술혁신 중요성 확인▼

▽한국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일본의 실패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대처하는 능력, 특히 정치인과 지식인 등 사회지도층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말해준다.

‘일본의 몰락’을 펴낸 오사카(大阪)대 모리시마 미치오(森嶋通夫)명예교수는 “무신념 무정책 무책임에서 벗어나 원대한 국가적 비전을 갖고 국민에게 희망과 활력을 주는 정치인이 나와야 국가발전의 톱니바퀴가 돌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미토모(住友)신탁은행 기초연구소 이토 요이치(伊藤洋一)연구원은 “시장경제의 세계적 파급과 디지털기술 진전이라는 세계사적 변화를 ‘먼 산의 불’로 여긴 안이한 인식이 90년대의 위기를 초래했다”며 “90년대는 기술혁신의 중요성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줬다”고 말했다.

에몬트는 “정치가와 고위관료가 80,90년대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일본은 다시 살아나기 어렵다”며 특히 정치지도자가 새로운 국가단결과 목적의식을 갖고 이를 국민에게 쉽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권순활특파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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