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금융계 빅뱅]유럽銀 '정부 보호막'벗고 공격적 합병 경쟁

  • 입력 1999년 8월 22일 19시 00분


유럽 금융계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화와 정보통신기술의 진전, 유로화 출범이 그 배경이다. 94년 3건에 불과했던 유럽 금융기관의 인수합병(M&A)이 98년에는 38건으로 급증했다.시장원리에 철저한 미국과 달리 유럽은 전통적으로 정부가 각종 규제로 금융기관을 보호했다. 60년대 이후 미국의 수많은 은행이 도산했으나 유럽의 웬만한 은행들은 살아남았고 M&A도 드물었다.

그런 유럽 금융계도 변화를 요구받았다. 끈질기게 유럽을 공략하는 미국 금융기관에 맞서려면 그만한 규모가 필요해졌다. 유럽공동시장의 탄생으로 몇몇 국내 은행간에 시장을 분점하던 과거 방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 됐다.

유럽 금융계의 변화는 M&A를 가장 꺼렸던 프랑스에서 극적으로 나타났다. 파리국립은행(BNP)은 6개월전 소시에테 제네랄(SG)과 파리바 은행에 대한 적대적 M&A를 선언하고 주식을 매집했다.

프랑스 금융기관은 주식을 교차보유해 적대적 M&A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다. 막강한 노동조합과 노동법도 M&A를 봉쇄했다. 그러나 BNP의 적대적 M&A선언으로프랑스도세계금융시장의변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스페인에서도 올해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국내 1위의 산탄데르 은행이 3위 센트랄 이스파노 은행을 114억달러에 인수해 유로랜드(유로를 공동화폐로 채택한 유럽연합 11개국)내 8위 은행으로 도약했다.

이탈리아도 비슷하다. 이탈리아 인텐사 은행은 올해초 BCI 은행을 인수해 국내최대은행으로 자리잡았다. 정부의 반대로 실패했으나 유니크레디토 은행과 산 파올 은행도 M&A를 시도했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은행들의 M&A는 주로 국내시장 방어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독일과 네덜란드의 은행들은 다르다. 이들은 글로벌 금융 메이저로 발돋움하기 위해 유럽연합(EU)역내외를 넘나드는 M&A에 나서고 있다.

독일 최대은행 도이체방크는 지난해 영국 모간 그렌펠 은행과 미국 뱅커스 트러스트 은행을 인수해 세계최대은행이 됐다. 도이체방크는 드레스덴방크와의 소매금융부문 통합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도매금융에 치중했던 시티은행 등 미국계 은행의 독일 지사들이 이제는 소매금융까지 공략하는데 따른 대응책이다. 한국외환은행과 제휴한 독일 코메르츠방크는 인수보다는 지분참여로 유럽 곳곳에 전략적 거점을 확보했다.

네덜란드 ING그룹은 얼마전 독일 BHF은행을 23억달러에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이 은행은 프랑스 크레디 코메르시알 은행 인수도 추진중이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소규모 유럽은행들은 앞으로 계속 M&A를 통해 규모를 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각종 규제로 M&A시장을 틀어막고 있는 프랑스의 금융기관이 가장 뒤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희성기자〉lee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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