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을 넘어서]'克日'집착 떨치고 세계로…통일로…

  • 입력 1999년 8월 15일 19시 43분


‘일제잔재 청산’ ‘극일(克日)’….광복절이 되면 늘 되풀이되는 단어요 구호들이다.

광복 반세기 동안 되풀이되어 온 만큼 여전히 절실한 과제들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을 넘어서고, 궁극적으로 일본 자체를 넘어서서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 나가기엔 미흡한 방향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새 천년을 앞둔 마지막 광복절을 보내면서 ‘새로운 광복’의 의미를 정립하기 위해 우리가 설정해야 할 방향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경제적 식민주의 경계를

광복절은 냉전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지니고 있다. 일제 식민통치에서의 해방이 우리 민족에게 빛이었다면 남북 분단은 그 그림자에 해당한다. 지구촌의 거의 유일한 냉전지대 한반도가 새 천년에도 분단상태로 남아있을 수는 없다. 여기에 현단계 ‘새 광복’의 첫번째 과제와 의미가 있다.새 천년은 또 세계화의 시대다. 우리는 이미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거센 세계화 물결에 휩쓸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에서 탈출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도도한 물결 속에서 자칫 경제의 자율성을 잃을 경우 ‘경제적 식민시대’가 올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를 넘어서는 데에 ‘새 광복’의 두번째 의미가 있다.

산업기술정보원 손종구(孫鍾九)박사는 “우리는 문화 경제적으로 새 형태의 광복을 모색해야 하며 이는 후손에 대한 의무”라며 “과거 우리가 일본의 그늘에 놓여 있었다면 지금은 훨씬 크고 강력한 ‘선진국의 그늘’에 놓여있어 이를 벗어나려면 훨씬 큰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세계화시대에 ‘극일관념’이 자칫 우리의 발전을 저해하는 강박관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일본을 적대시하고 원수로 생각해 모든 점에서 일본을 이기자는 극일관념은 ‘세계화의 디딤돌’로서의 일본을 보지 못하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을 세계화 디딤돌로

결국 진정한 극일과 새로운 광복을 위해선 일본식민시대에 배태되어 아직껏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강박관념들이 과연 새 시대에 적합한지 살필 필요가 있다.

우선 민족주의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민족주의는 항일운동과 국가발전의 원동력이었고 민족 정체성을 유지한 힘이었다. 해방 이후 반독재 투쟁 역시 민족주의에 맥이 닿아 있다고 평가하는 학자도 있다.

이 시점에 굳이 민족주의를 살려야 한다면 외부 도전에 대한 방어적 성격이 짙은 19, 20세기형에서 벗어나 새 문명의 흐름에 조화를 이뤄 다른 민족과의 공존을 지향하는 21세기형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배타적 민족주의 탈피할때

서울대 김용덕(金容德)교수는 “세계평화와 공존의 틀을 갖추지 못한 민족주의는 천박한 민족주의”라며 “초국가적 시민연대가 형성되고 있는 마당에 이웃국가와 국민들을 존중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말했다.

21세기형 민족주의의 ‘공존’이란 화두는 국가발전 전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요즘 급속히 부상하고 있는 ‘구한말(舊韓末)론’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최근 부상하는 중국과 거대국가 일본, 다시 일어설 잠재력이 있는 러시아, 그리고 미국 등이 주도하는 금융자본의 유입 등을 놓고 볼 때 한반도 정세가 19세기 말과 유사하다는 것.

그렇다고 미국에 의존해 안전을 유지하던 ‘진영(陣營)외교’의 시대는 이미 지나고 스스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력을 바탕으로 강대국을 조율하고 선택해야 하는 시대다.

★미래지향 발전전략 정립

공로명(孔魯明)전 외무부장관은 “21세기에 우리는 평화지향적인 공존 이미지를 지닌 중형(中型)국가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의 새로운 발전전략을 정립하는 데에서 ‘새로운 광복’은 완성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준우·홍성철기자〉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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