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혁명 20주년]『경제난 해소가 급선무』

  • 입력 1999년 1월 31일 19시 39분


79년 2월1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 공항. 아야툴라 루홀라 호메이니옹이 오랜 망명생활 끝에 에어 프랑스편으로 도착, 트랩을 내렸다. 이슬람 혁명의 시작이었다. 그 뒤 열흘간 전국에서시위가벌어졌고팔레비 국왕의 친위부대까지 혁명세력에 가담했다. 11일, 이란 국영 라디오 방송은 “팔레비 왕정이 무너졌다”며 사상 최초의 이슬람 공화국 창설을 알렸다.

이란은 혁명 20주년을 맞은 1일부터 11일까지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펼치고 있지만 20년전의 혁명의 이상과 열기는 상당히 퇴색하고 수그러든 상태다.

이란은 지금 과거 어느때보다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97년 집권한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주도하는 개혁정책으로 개인의 자유가 신장되고 여성의 사회진출도 활발해졌다. 테헤란 시내에는 살벌한 반미 구호 대신 서방 기업의 광고판이 속속 들어서고 청년층과 중산층은 인터넷 사이버카페 위성TV를 즐긴다.

무엇보다 국가전략이 ‘혁명수출’에서 ‘관계개선’으로 바뀐 점이 주목된다. 인근 아랍 국가들은 이란의 혁명이념이 자국의 정정불안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등을 돌린데다 서방과의 관계도 단절돼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피폐만 가중됐기 때문.

내정에선 온건노선을, 외교에선 중도노선을 선택해 이란을 세계공동체에 통합시켜야 살 수 있다는 하타미대통령의 실용주의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물론 “혁명정신이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슬람 강경파의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작년 4월 카르바시 테헤란 시장이 공금횡령 혐의로 구속되면서 온건파와 강경파의 권력투쟁으로 위기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으나 강경파들은 현실론에 밀려 후퇴했다.

최근 이란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경제난. 원유수출에 의존해 왔던 이란 경제는 유가하락으로 침체에 빠졌다. 올해 예상되는 재정적자만 63억달러, 외채는 2백20억달러나 된다. 연 18%나 되는 물가상승과 20%가 넘는 실업률은 사회 불안요인이 되어있다.

영국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올 1월 이란에 관한 전략논평에서 “경제가 이란의 앞날을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이란 이슬람혁명 20주년 주요일지〉

79년 2월〓호메이니 귀국, 혁명으로 팔레비왕정붕괴

11월〓테헤란 미대사관 점거―인질극

80년 4월〓미군 인질구출작전 실패

7월〓팔레비왕 이집트 카이로에서 사망

9월〓이란 이라크전 발발

81년 10월〓하메네이 대통령 선출

88년 8월〓이란 이라크전 종료

89년 6월〓호메이니 사망 최고지도자인 아야툴라에 하메네이가 승계 라프산자니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온건노선 추구

92년 6월〓라프산자니 대통령재선

97년 5월〓하타미대통령 당선, 세계공동체로의 통합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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