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중앙銀 『금리인하 없다』인하요구 일축

  • 입력 1998년 11월 6일 19시 22분


독일의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연방은행)가 5일 금리를 현상유지키로 결정, 사민당―녹색당 연립정부의 금리인하 요구를 일축했다.새 정부와 중앙은행간의 1회전에서 새 정부가 패배한 셈.

분데스방크는 이날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정례회의에서 재할인율 2.5%, 롬바르트(채권담보대출)금리 4.5%, 레포(환매채)금리 3.3%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민당 당수인 오스카 라퐁텐 재무장관은 지난주 고용창출과 경기활성화를 위해 주요금리를 인하할 것을 촉구해 새정부의 중앙은행 독립성유지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한스 티트마이어 분데스방크 총재는 “실업문제는 경제구조의 문제이며 통화정책으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며 요구를 일축했다.

라퐁텐 장관도 이날 회의에 참석, “정부의 누구도 중앙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의 독립성을 문제삼지 않고 있으며 신정부는 분데스방크와의 우호적인 협력을 원하고 있을 뿐”이라고 물러섰다.

분데스방크의 독립성은 독일의 역사적 경험의 산물.

1920년 1차대전이 끝난 후 세워진 바이마르 공화국은 전쟁배상금을 새 돈을 찍어 갚았다. 이 과정에서 통화량은 1923년 1·4분기에 2백50경(京, 1경은 1조의 1만배)마르크를 기록한 뒤 12월에는 5해(垓, 1해는 1경의 1만배)마르크를 기록하는 등 천문학적 숫자로 늘어났다. 하루 60조마르크씩 공급된 것.

물가는 이 해 20억배가 올랐고 미 달러당 환율은 4조2천억마르크였다.

이같은 경제적 혼란은 국가사회주의를 주창한 나치세력이 권력을 잡아 ‘광기의 역사’가 만들어진 결정적 배경이 됐다. 히틀러도 중앙은행의 독립성만큼은 보장했다.

통독의 해인 90년 헬무트 콜 총리는 동서독 화폐통합을 반대하는 중앙은행을 철저히 따돌리고 7월1일자로 전격 추진했으며 오토 펠 당시 중앙은행총재는 이에 항의, 끝내 은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만큼 분데스방크는 독립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다.

전후 분데스방크로 개명된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헌법으로 보장됐으며 이번 금리논쟁도 독립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허승호기자〉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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