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파키스탄 전면전 조짐…국경 포격전 총90명 사망

입력 1998-08-03 19:44수정 2009-09-25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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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슈미르’의 영유권을 둘러싼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카슈미르 지역에서 최근 5일째 벌어진 포격전에서 이미 90여명이 사망했으며 1천3백㎞에 이르는 양국 국경의 곳곳에서 산발적인 포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같은 국경분쟁은 자칫 전면전으로 비화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71년 제3차 인도 파키스탄전쟁 이후 최악인 이번 포격전은 직접적으로는 올 5월 양국이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상호 불신이 극도로 고조된데 따른 것이다. 특히 이번 분쟁은 양국 총리의 스리랑카정상회담이 결렬된 가운데 벌어져 사태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국제사회는 두 나라의 갈등관계가 핵전쟁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분쟁원인〓카슈미르를 둘러싼 양국 분쟁의 근본원인은 종교적 갈등에서 기인한다. 히말라야산맥과 카라코람산맥에 둘러싸인 험준한 산악지대인 카슈미르는 기원전 3세기 이래 힌두문화의 중심지였으나 12세기부터 무굴왕조가 지배하면서 이슬람영향권에 들어갔다. 때문에 카슈미르지역은 인도에서 유일하게 힌두교도보다 이슬람교도가 많은 곳이다. 인도 전체인구 중 이슬람교도의 비율이 12%인데 비해 이 지역은 60%를 넘는다.

▼갈등과정〓47년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하면서 인도 파키스탄 양국은 본격적인 분쟁의 시대로 접어든다.

당시 이슬람교도들은 영국 및 인도와의 협상 끝에 인도 서북부와 동부지역에 독립국인 (동서)파키스탄을 세워 분리해 나갔다. 종교적으로 보면 카슈미르는 당연히 파키스탄으로 귀속돼야 했다. 그러나 힌두교도였던 카슈미르왕국의 당시 군주인 하리 싱이 일방적으로 인도 귀속을 선언하면서 서남아시아의 화약고로 변했다.

지역주민과 지역통치권자의 갈등은 48년 인도 파키스탄 제1차 영토전쟁으로 이어졌다. 49년 휴전뒤 북부의 ‘아자드 카슈미르’는 파키스탄령으로, 남부의 ‘잠무 카슈미르’는 인도령으로 분할통치키로 합의했다. 그러자 잠무 카슈미르의 이슬람교도들은 민병대를 조직해 무장 분리독립투쟁에 들어갔으며 65년 2차 전쟁도 이때문에 벌어졌다. 71년 3차전쟁은 방글라데시로 독립하려는 동파키스탄을 인도가 지원하면서 발생했다.

▼양국의 입장〓인도는 잠무 카슈미르의 현상유지를 바라지만 파키스탄은 자국에 합병하는 것이 목표다. 파키스탄의 기본전략은 잠무 카슈미르를 국제문제화해 주민투표로 장래를 결정하자는 반면 인도는 국제문제화에 반대하면서 협상을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제정치의 간여〓인도가 구 소련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자 미국과 중국은 파키스탄을 지원하면서 인도의 확대를 견제했다.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무력점령기간중 미국은 파키스탄을 집중지원했다.

인도 파키스탄 양국은 강대국의 세력균형을 이용해 특히 무력증강을 경쟁적으로 벌여오면서 국가이익도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 인도-파키스탄 분쟁 일지 ◈

△47년〓파키스탄, 인도로부터 분리독립

△48년〓잠무 카슈미르를 통치하던 도그라왕국 군주의 인도 귀속 표명에 이슬람교도 폭동. 인도―파키스탄 1차 전쟁

△49년〓유엔, 아자드 카슈미르는 파키스탄령으로, 잠무 카슈미르는 인도령으로 영토분쟁 조정

△65년〓2차 인―파 전쟁 발발

△71년〓동파키스탄의 벵골 분리주의자들이 분리독립을 기도, 파키스탄 진압병력 투입. 인도가 분리주의자 지원하며 동파키스탄을 침공. 3차 인―파전쟁. 파키스탄 항복으로 방글라데시 독립

△72년〓아자드 카슈미르와 잠무 카슈미르간에 통제선을 설정하고 파키스탄과 인도가 각각 통치키로 양국간 합의

ga.com△98년5월〓인도와 파키스탄 독자적 핵실험 강행

<황유성 기자>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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