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열도「마지막 쇼군」열풍…TV사극 인기업고 소설 불티

입력 1998-05-06 19:56수정 2009-09-2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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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에 ‘마지막 쇼군(將軍)’붐이 다시 일고 있다.

격동의 19세기 후반 메이지(明治)유신 주도세력에 축출돼 권력을 내놓은 도쿠가와(德川)막부의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의 묘소와 기념관에는 올해 예년보다 3배 가량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특히 ‘골든 위크(황금 주일)’로 불린 지난달 말에서 이달초의 연휴에는 일본 전역에서 찾아든 인파가 그의 묘소를 발 디딜 틈 없게 만들었다.

서점에서는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 작 ‘최후의 쇼군’을 비롯해 그의 일대기를 담은 전기와 역사소설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마지막 쇼군’이 다시 붐을 이루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요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일본인을 사로잡고 있는 NHK방송의 주말 대하드라마 ‘도쿠가와 요시노부’.

그는 흔히 ‘비운의 쇼군’으로 불린다. 29세의 젊은 나이였던 1866년에 쇼군으로 추대된 그는 구미(歐美)열강의 일본진출 움직임에 따른 존왕양이(尊王攘夷)운동에 밀려 쇼군 취임후 1년도 안돼 2백년 가까이 지속된 도쿠가와 정권을 왕실에 내놓아야 했다.

왕정복고 후에는 메이지유신 주도세력의 견제로 겨우 죽음을 면하며 40년 이상 낚시나 하고 사진이나 찍으며 지내다 76세인 1913년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한때 ‘무능한 호색한’ 정도로 낙인찍혔던 그는 재조명 작업이 활발해지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왕정복고세력과 겨룰 만한 무력을 갖고서도 평화적으로 정권을 내놓은 데서 시대적 변화를 읽은 지도자였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일본은 내전에 휩싸이고 구미 열강에 의해 유린됐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도쿄〓권순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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