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투자자가 본 한국경제]『제2換亂 가능성 크다』

  • 입력 1998년 3월 12일 19시 46분


“한국은 부도가 나도 부도가 나지 않는 나라다.”

“금융개혁을 미루고 외채 만기연장에만 안주하고 있다.”

“기업들의 구조조정은 알맹이가 없고 생색내기용이다.”

최근 국내 경제연구소를 찾은 외국 투자분석가 경제학자 언론인들이 한국경제를 보는 시각이다.

LG경제연구원 삼성 대우경제연구소 등 민간경제연구소는 요즘 시장조사 명목으로 한국을 찾아오는 수많은 외국 손님을 맞고 있다. 한국 경제를 관찰한 이들의 지적은 날카롭다.

▼너무 빨리 잊는다〓외국인들은 신정부들어 경제개혁 속도가 오히려 느려지면서 제2의 환란이 닥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스위스크레딧사의 한 투자분석가는 “약속한 금융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생보 리스 투신사의 부실자산이 제2의 환란을 몰고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금융개혁을 미루고 단기외채를 중장기로 전환하고 차관으로 가용외환보유고 목표치를 채우는 상황에 안주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한 외국인 투자자는 금융개혁 진전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관계부처를 수소문했지만 금융감독위원회는 발족도 하지 않은 상태이고 다른 부처들은 정부조직개편으로 모두 일손을 놓고 있어 혀를 찼다고 전했다.

기업들의 구조조정계획을 꼼꼼히 살펴보면 구체성 없이 추상적인 내용을 담은 생색용이라는 지적이다.

▼온정주의〓런던에 소재한 핸더슨인베스터스의 한 펀드매니저는 올해 2조원이 넘게 부실기업에 지원된 협조융자를 ‘블랙홀’이라고 지칭했다.

수출주력기업과 우량기업에 투자하기에도 모자랄 자금을 망할 기업에 허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부도가 나도 부도가 나지 않은 나라’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소식이다. 원칙없는 온정주의 정책이 이러한 비웃음을 사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금융개혁과 기업구조조정을 강도높게 추진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실제로는 ‘우선 살리고 봐야 하지 않느냐’는 무원칙한 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판이다. LGT에셋매니지먼트의 한 투자전문가는 “10년 가까이 국제통화기금(IMF)체제로 허덕인 남미의 전철을 밟느냐, 아니면 힘들더라도 짧게 고통을 끝내느냐는 것은 한국 정부의 선택에 달렸다”고 말했다.

▼투자는 아직 이르다〓국내 투자를 위해 방한한 세계은행 산하 국제금융공사 동아시아담당자는 “대기업과 합작투자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상호지급보증의 해결점이 보이지 않아 투자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증시에 외국자금이 유입되고 외국투자문의가 많다고 해서 외국자본이 들어온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며 “현재같은 개혁 속도라면 하반기에는 외국자본이 오히려 빠져나가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융기관이 우량기업에도 대출을 중단하는 관행이나 새로운 금융기법의 개발을 등한시하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현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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