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동남아 상품」분쟁 확산 조짐

  • 입력 1998년 2월 11일 19시 51분


국내 우량은행들이 지난해 JP모건 등 미국계 투자은행이 판매한 동남아 통화관련 파생상품을 국내 투자신탁사와 증권사 등에 되팔면서 지급보증을 선 것과 관련, 법정분쟁이 확산될 조짐이다. SK증권은 9일 JP모건을 대리해 파생상품을 판매한 보람은행을 상대로 1억8천9백만달러를 JP모건에 지급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채무이행금지 가처분신청을 서울지법에 냈다. SK증권은 LG금속 한남투신 등과 공동으로 1천2백80만달러의 역외펀드를 설립, 동남아 통화관련 파생상품에 투자를 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7월 태국 바트화와 인도네시아 루피아화가 폭락하면서 이 펀드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이와 관련, SK증권은 JP모건에게 돈을 주지 못하겠다는 이유에 대해 “JP모건이 동남아 통화 관련 파생상품을 팔면서 매우 전망이 밝고 건전한 투자라고 선전했고 투자위험이 발생하면 사전에 이를 고지해야 하는데 이러한 계약 내용을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SK증권은 직접 JP모건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신세기투신이 JP모건으로부터 5천만달러를 빌려올 때 환차손 회피수단으로 함께 구입한 파생상품 매입대금에 대해 지급보증을 섰던 주택은행도 JP모건의 대지급(代支給) 요구를 받고 이에 응할 수 없다며 미국 뉴욕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문제의 파생상품은 예컨대 엔화가 약세로 가면 절하된 만큼 국내 금융기관이 받고 반대로 태국의 바트화가 약세로 가면 절하분의 5배 만큼 JP모건에 주는 방식의 금융상품. 이같은 거래로 인해 국내 금융기관들이 입은 손실은 약 3억달러 가량으로 추산되고 있다. 계약 당시에는 지난 10여년간 엔화와 바트화는 1대5의 비율을 유지해와 국내 금융기관들은 이같은 비율이 깨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들 상품에 대한 지급보증을 섰던 은행들은 주택은행 보람은행 외환은행 국민은행 장기신용은행 신한은행 등으로 이중 주택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은 큰 손해를 보기 전에 반대거래 등을 통해 발을 뺀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은행은 소송을 통해 파생상품 손실분에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할 의무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전략을 짜고 있다. 이들 파생상품의 만기일을 앞두고 국내 금융기관과 미국 투자은행 사이에 손실책임을 둘러싼 거액의 국제소송 움직임이 가시화하는 것과 관련, 미국 월 스트리트 저널지는 11일 ‘한국 증권 회사의 소송이 외국인의 한국에 대한 투자를 쫓아낼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신문은 ‘뉴욕 외채협상 이후 채권은행과 개별적인 협상을 앞둔 시점에서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짐으로써 한국에 투자하려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JP모건 관계자는 “한국 회사가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으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관계자는 “이 소송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한국과의 계약 위험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이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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