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아사히신문 본지 독점게재]한국민 「변혁」택했다

  • 입력 1997년 12월 20일 20시 03분


공전의 경제위기 속에 치러진 한국의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金大中)씨가 대접전끝에 당선됐다. 71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에 도전, 석패한 때로부터 네번째 도전만에 거둔 집념의 승리다. 김대중씨가 걸어온 길은 한국민주화운동 역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본으로부터의 납치나 사형판결 등 몇차례 생명의 위험을 겪으면서 힘들게 살아왔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쿠데타나 학생혁명, 관권선거가 오랫동안 계속됐다. 대통령 직접선거가 부활한 10년전 민주화선언 후에도 군인출신이 대통령이 되었으며 이어 그의 지원을 받는 형태로 문민대통령이 출현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국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야당 대통령후보가 여당계 후보를 이겼다. 한국 국민은 경제위기 속에서 「계속」보다는 「변혁」을 택했다. 민주적 선거를 통해 평화리에 실현된 첫 정권교체는 한국 민주정치 발전에 실로 중요한 한걸음이다. 한국 정치에 깊이 뿌리박힌 지역대립에 구멍이 생긴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박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은 모두 경상도 출신자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역간 격렬한 대립감정이 선거의 전면에 나오지는 않았다. 김대중씨는 최초의 전라도출신 대통령이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선거때마다 김대중씨에게 불었던 「북풍(北風)」이 이번에는 불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북한간 격차가 커진 현실과 이번 선거에서 과거 정보기관 책임자였던 김종필(金鍾泌)씨와 제휴한 사실이 「북풍」을 둔화시켰다. 현직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행정 재벌 군부가 과거처럼 여당후보를 위해 표를 모으지 않은 것도 이번 선거의 특징이다. 김대중씨의 당선은 한국 정치풍토와 사회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체제가 흔들리는 일은 이제 없을 것같다. 하지만 내년 2월 발족하는 신정권의 앞길은 대단히 험난하다. 새 대통령은 과거 어떤 대통령보다 어려운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먼저 유례없는 경기위기 극복이다. 대선중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몰렸다. 경제위기는 새 대통령의 어깨를 무겁게 누를 것이다. IMF와의 합의 일부에 대해 「재협상」을 주장한 김대중씨는 당선후 기자회견에서 『합의를 준수한다』고 밝혔다. IMF와의 합의에 따라 재벌에 대한 보호정책의 수정과 경제구조의 대담한 개혁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김대중씨에게는 「급진적」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무엇을 할지 알 수 없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의회에서는 소수여당이 되기 때문에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협조 없이는 난국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웃나라로서 기대하고 싶은 것은 북한과의 긴장완화다. 북한에 대해 유연한 대응을 주장해온 김대중씨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그는 당선후 4자회담 추진과 남북합의서 이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필요하면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전향적인 자세로 평가한다. 한일(韓日)관계는 현재 반드시 순조롭지만은 않다. 영토문제와 어업협정, 역사인식 등 양국 간에는 어려운 문제가 있으나 일본을 잘 아는 김대중씨가 한일관계라는 대국적 견지에서 적절히 대처하기를 희망한다. 〈도쿄〓권순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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