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학살때 적십자사는 뭘했나』…「구원외면」자료공개

  • 입력 1997년 5월 3일 21시 42분


「아우슈비츠의 유태인 데이비드 벤 토브는 국제적십자사관계자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적십자사가 와서 수용소의 참상을 보고 독일군의 만행을 세상에 알려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적십자사는 오지 않았다. 수용소의 유태인들은 간절한 기다림 속에서 가스실로 끌려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적십자사는 도대체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는가」. 세계2차대전중 유태인 대량학살에 대한 국제적십자사의 책임론이 일고 있다. 발단은 제네바 국적(國赤)본부의 자료공개. 국적은 50년만에 처음으로 유태인의 대량학살에 관한 자체기록과 자료 2만5천건(약 6만페이지)을 공개하고 이를 워싱턴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기증했다. 지난 2일부터 일반에 공개되기 시작한 이 기록들은 당시 적십자사가 유태인 대량학살을 알고서도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지는 『학살이 시작된 1941년 이후 국적은 이에 관한 충분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며 『그러나 국적은 학살을 막기 위한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뿐만아니다.국적은 번번이 독일군으로부터 조롱을 당했다. 1944년 6월 국적 대표단은 체코에 있는 유태인 3만여명이 학살당한 테레진 수용소를 방문했다. 대표단은 수용소에 따뜻한 카페가 있고 멋진 오케스트라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40명의 어린이들이 공연하는 오페라까지 관람했다. 대표단은 찬사의 보고서를 본부에 보냈다. 나치는 대표단이 떠난후 이 어린이들을 모조리 살해했다. 국적의 책임론에 대한 반론도 있다. 한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희생자와 그 가족들은 지금도 『국적이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믿고 있다. 〈워싱턴〓이재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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