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우익세력,「위안부 교과서수록」TV토론서 『궁지』

  • 입력 1997년 2월 1일 20시 15분


1일 새벽 일본의 민방TV인 텔레비 아사히는 올봄부터 중학교 사회교과서에 실릴 군위안부 기술의 타당성을 놓고 4시간에 걸친 심야토론을 방영, 일본시청자들의 새벽잠을 설치게 했다. 새벽 1시부터 시작된 토론에는 군위안부 기술삭제 운동을 벌여온 도쿄(東京)대 후지오카 노부가쓰(藤岡信勝)교수와 찬성론자인 주오(中央)대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교수 등 14명이 출연, 불꽃튀는 설전을 벌였다. 찬반 취지를 설명하는 1라운드부터 우익 진영은 밀리는 양상이었다. 후지오카 교수 등은 「매춘부」란 용어까지 동원, 『성장과정의 학생들에게 명확하지도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자학(自虐)사관」을 가르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란 주장을 폈다. 당장 한 여성 저널리스트로부터 『인간의 존엄은 과거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 이를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란 반론이 튀어 나왔다. 토론 참석을 위해 비행기로 달려 왔다는 한 독일거주 언론인은 『당신들 같은 사람들 때문에 해외의 일본인들은 부끄러워 살 수가 없다』고 흥분했다. 이어 제2라운드. 후지오카 교수와 요시미 교수를 「주장(主將)」으로 전개된 논쟁은 『「강제연행」이란 증거가 없다』는 주장과 『식민지배하의 강압적인 당시 상황을 총체적으로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조사를 했다는 후지오카 교수의 『군위안부 피해자를 자처하는 여성들의 목적은 결국 돈』이라는 「폭투」로 균형이 깨졌다. 『피해자들을 직접 만났느냐』는 추궁에 그가 우물쭈물하자 『피해자들을 만나보지도 않고 그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하는 게 「바른 사관」이냐』는 반박이 나왔고 방청석에서는 박수가 일었다. 또 요시미교수가 『자치성 지하창고에 길이 6천m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가 미공개 상태로 남아 있다』고 반박하자 우익학자들은 응대조차 궁한 모습이었다. 토론 방영후 방송국 측이 실시한 전화 찬반여론조사에서는 54%를 넘는 시청자가 「군위안부 교과서 기술」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론은 우익 진영의 「판정패」였다. <동경=이동관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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