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청부살해… ‘19금’ 잔혹 드라마 판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마우스’ ‘펜트하우스2’ 등 자극적 장면 적나라하게 묘사
‘러브씬넘버’는 아예 19금
방심위 5기 위원 임명 늦어져 두달 넘게 ‘심의 공백’ 상태
시청자들 “잔인하다” 민원 쇄도 “메시지 전달 위해 필요” 시각도

SBS ‘펜트하우스2’ 5회에서 극중 고교생인 은별은 트로피로 로나를 공격한다. SBS 화면 캡처
SBS ‘펜트하우스2’ 5회에서 극중 고교생인 은별은 트로피로 로나를 공격한다. SBS 화면 캡처
3일 밤 12시 무렵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한 키워드가 쏟아져 나왔다. 이날 첫 회를 선보인 tvN 드라마 ‘마우스’였다. 일부 시청자들이 “너무 잔인해 채널을 수시로 돌려가며 봤다” “아역 배우들이 걱정된다”는 반응을 SNS에 올린 것. 첫 회에서 극중 연쇄살인마 한서준(안재욱)은 목이 잘린 시체를 들고 다니는가 하면 어린아이를 폭행했다. 한서준의 아들로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는 재훈(김강훈)은 동물을 학대하고 어린 동생까지 생매장하려 했다. 드라마는 초반부터 ‘19세 이상 시청 가’(19금)로 편성됐다.

올 들어 잔혹 드라마들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9일 시작한 SBS ‘펜트하우스’ 시즌2는 살인, 청부살해, ‘왕따’ 등 온갖 폭력 장면이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첫 회에서만 무려 세 건의 자살 또는 살인 사건이 나왔다. 맞바람을 포함해 20∼40대 여성들의 다양한 연애 행태를 담은 MBC의 ‘러브씬넘버’는 모든 회차가 19금이고, 이 중 일부는 ‘웨이브’에만 공개됐다. JTBC ‘괴물’은 잘린 손가락이 드러난 살인 장면 등이 19금으로 편성된 1, 2회에 등장했다.

tvN ‘마우스’ 1회에서는 재훈(사진 왼쪽)이 동생을 구덩이로 밀어 넣으며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보인다. tvN 화면 캡처
tvN ‘마우스’ 1회에서는 재훈(사진 왼쪽)이 동생을 구덩이로 밀어 넣으며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보인다. tvN 화면 캡처
누구나 볼 수 있는 안방극장에 폭력이나 선정성이 높은 장면이 그대로 노출됨에 따라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SBS 시청자 게시판에는 펜트하우스의 폭력성을 지적하는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5일 글을 올린 한 시청자는 “미성년자가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이 아주 많이 잔인하게 노출됐다. 심의 규정은 없는 건가. 방송에 내놓을지 말지는 구분해줬으면 한다”고 썼다. 이날 방송에선 천서진(김소연)의 딸 은별(최예빈)이 트로피로 라이벌인 로나(김현수)의 목을 공격한 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게 하는 장면이 나왔다. 해당 회차엔 19금이 붙긴 했지만, 청소년이 접근하기 쉬운 지상파 방송의 황금 시간대(오후 10시)에 방영됐다.

최근 이런 현상이 빈발하는 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공백도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있다. 올 1월 29일 방심위 4기 위원들의 임기가 끝난 후 5기 위원에 대한 임명이 늦어지면서 방송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방심위 공백으로 인해 가장 최근에 ‘주의’ 조치를 받은 드라마는 1월 4일의 펜트하우스 시즌1이었다. 이후 자극적인 드라마가 쏟아지고 있는데도 두 달 넘게 조치가 없는 상태다. 한 지상파 드라마 PD는 “펜트하우스의 경우 19금을 달고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인 장면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다”며 “방심위원들이 공백인 데다 제재도 사후처방이라 문제 있는 장면을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일각에선 잔인한 폭력 묘사는 드라마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라는 시각도 있다. 불륜이나 폭력 소재를 자주 다루는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한 요소라는 의견도 있다. 세계적으로 흥행한 ‘킹덤’ ‘인간수업’은 모두 청소년 관람 불가였지만 성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웰메이드 콘텐츠’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콘텐츠들은 넷플릭스 등 유료 플랫폼에서 성인 인증을 거쳐야 시청할 수 있는 반면에 지상파 등의 드라마는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차이가 있다.

정덕현 드라마평론가는 “과거 지상파에선 19금 프로그램이 주로 선정적인 수준 위주였지만 지금은 그 법칙이 깨졌다”며 “시청자도 TV에서 각자만의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표현 자체를 막기보다는 각 콘텐츠를 소화할 연령대를 어떻게 정하고 합리적으로 내보낼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9금#잔혹#드라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