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미녀와 연산군, 헐벗은 욕망과 트라우마…두 기자가 본 ‘간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3일 16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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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숭재와 임사홍을 전국 각지에 보내고 채홍사라 칭하여 아름다운 계집을 간택해 오게 하라.’(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연산11년 6월16일)

다음달 21일 개봉하는 영화 ‘간신’은 욕망과 트라우마의 영화다. 연산군(김강우)의 명에 따라 간신 임숭재(주지훈)가 조선 팔도 1만 명의 미녀를 강제 징발하는 ‘채홍’(採紅)을 역사적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어미 잃은 트라우마에서 비롯한 연산군의 광기와 색욕, 이에 빌붙어 왕을 쥐락펴락한 채홍사 임숭재의 권력욕, 왕의 총애를 받고자한 여인들의 욕망 등을 버무려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중년의 ‘아저씨’ 기자와 미혼의 여기자가 서로의 돋보기로 들여다봤다.

서정보=1만 부녀자가 궁중에서 왕의 간택을 받기 위해 혹독히 훈련받는 과정을 담다보니 노출신이 파격적이야. 특히 여주인공인 단희(임지연)과 설중매(이유정)이 ‘서로 탐하라’는 왕의 명령에 따라 격렬한 동성애 장면을 보여주는 게 인상 깊던데. ‘쌍화점’의 여자 버전이라고 할까.

이새샘=그런데 서로 애정을 나누는 상황이 아니어서 에로틱하다기보단 불쌍해보였고…. 관객 입장에서도 ‘또 벗어?’라는 느낌에 지겹던데. 나중에 나오는 임숭재와 단희의 상상 섹스신도 에로의 탈을 쓴 순정물처럼 보였어.

서=노출 장면은 많이 나오는데 남자로서 흥분되진 않더라. 서로 탐하는 장면도 먼저 절정에 달하는 쪽이 죽임을 당한다는 설정이어서 격렬한 정사 신인데도 비장한 느낌마저 들었고.

이=채홍된 여자들이 왕을 만족시키기 위한 비급을 배운 뒤 마지막 2명이 최종 대결한다는 건 왠지 무협소설과 같기도.

서=달달하고 야한 영화를 기대하면 실망할 것 같던데. 민규동 감독도 ‘에로’에는 방점이 찍혀 있지 않다고 했고.

이=등장인물 사이의 욕망과 갈등이 부딪치는 지점이 너무 많아. 마치 드라마 20부작으로 풀어야할 얘기를 2시간 남짓의 영화로 뭉쳐놓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좀더 가지치기를 했어야 지루하지 않았을 것 같아.

서=그래도 다양한 욕망과 갈등을 이정도로 깔끔하게 봉합한 것만 해도 대단하지 않아? 전개도 스피디해서 난 지루하지 않던데.

이=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얘기 안하겠지만 결말도 사실성이 크게 떨어져 보여. 온정적인 한국 관객의 정서를 감안한 것 같지만.

서=하하. 동감. 한국 영화는 그런 게 맛이야. 임숭재가 왕의 여자 단희와 사랑에 빠져 중종반정(1506년)에 참여한다는 설정도 현실적이진 않지. 실제 역사에선 임숭재는 반정 전에 죽는데 ‘임금에게 더 좋은 미녀들을 조달해주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해. 그렇긴 해도 영화니까 이 정도는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영화 끌어들여 미안하지만 900만 명 넘게 든 ‘관상’보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 같지 않아.

이=스토리보단 배우들의 연기가 훨씬 돋보여. 주지훈의 내면 연기, 김강우의 신들린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았고. 임지연도 전작 ‘인간중독’에 이어 또 노출 연기여서 걱정했는데 가능성을 보여줬어.

서=기생 설중매 역의 이유정도 신분상승의 욕망에 이글거리는 눈빛이 살아 있어 좋았고 연산군의 후궁 장녹수를 걸쭉하게 연기한 뮤지컬 배우 차지연도 눈길이 갔어. 영화는 처음이라는데 앞으로 캐스팅 제의 좀 받을 거 같던데.

이=민 감독은 여자들을 잘 다루는 감독 같아. 이번 임지연-이유정의 조합도 좋았고, ‘여고괴담2’ ‘내 아내의 모든 것’ 등에서처럼 여배우의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있어 보여.

서=전반적으론 재밌었어. 눈요기거리도 있고 전개도 스피디해 추천하고 싶은데.

이=배우의 연기, 소재의 참신함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 입소문 나기 힘들 거 같아. 속으로는 좋게 봤어도 추천할 포인트를 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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