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덕수 옆에 옛 전우가 있었다… 눈물에 젖은 美노병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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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 美 개봉 현장

관람 끝난 뒤… “참전용사 지원단체에 성금” 11일 미국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의 리걸 극장에서 영화 ‘국제시장’의 특별 상영이 끝난 후 한인단체 대표들이 5000달러를 모아 미국 참전용사 지원단체인 ‘메트로플렉스 군 자선신탁’에 전달하고 있다. 흥남철수 당시 피란민 구출을 도운 에드워드 앨먼드 미군 소장의 외손자 토머스 퍼거슨 예비역 대령(왼쪽)과 장진호전투에 참전한 스티븐 옴스테드 미 예비역 해병대 중장(오른쪽에서 두 번째)도 참석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관람 끝난 뒤… “참전용사 지원단체에 성금” 11일 미국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의 리걸 극장에서 영화 ‘국제시장’의 특별 상영이 끝난 후 한인단체 대표들이 5000달러를 모아 미국 참전용사 지원단체인 ‘메트로플렉스 군 자선신탁’에 전달하고 있다. 흥남철수 당시 피란민 구출을 도운 에드워드 앨먼드 미군 소장의 외손자 토머스 퍼거슨 예비역 대령(왼쪽)과 장진호전투에 참전한 스티븐 옴스테드 미 예비역 해병대 중장(오른쪽에서 두 번째)도 참석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영화는 끝났지만 객석은 고요했다. 그 대신 의자 위로 들썩이는 어깨들이 많이 보였다. 한 백인 노인은 극장에서 주문한 팝콘에는 손을 거의 대지 않은 채 휴지조각으로 연신 눈물을 닦고 있었다.

11일 오후 미국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시 리걸 극장. 북한동포사랑 한인교회연대(KCNK) 등이 주최하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워싱턴협의회가 후원한 영화 ‘국제시장’(영어명 ‘Ode to My Father’) 시사회에 참석한 30여 명의 6·25전쟁 미국 참전 용사들은 2시간 가량의 상영 시간 동안 타임머신을 탄 듯 65년 전 전쟁의 참상으로 돌아간 표정이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황덕수의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 정진영 씨가 흥남철수 장면에서 극 중 아들인 어린 황덕수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동아일보DB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황덕수의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 정진영 씨가 흥남철수 장면에서 극 중 아들인 어린 황덕수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동아일보DB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1950년 12월 흥남철수 장면부터 “오우…”라는 탄식이 객석 곳곳에서 들렸다. 6·25전쟁에 개입한 중공군을 피해 함경남도 흥남에서 단행한 철수작전을 그린 장면에서 피란민들의 생이별과 전쟁의 참상이 이어지자 노병들은 처음부터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듯했다. 특히 주인공 덕수가 피란민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승선하기 전 막내 여동생 막순이의 손을 놓치는 장면에선 안타까운 한숨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고 현봉학 박사 역할을 맡은 배우 고윤 씨가 흥남철수 장면에서 미 10군단장 에드워드 앨먼드 소장에게 피란민들을 군함에 태워가자고 간곡히 설득하고 있다. ‘국제시장’ 화면 캡처
영화 ‘국제시장’에서 고 현봉학 박사 역할을 맡은 배우 고윤 씨가 흥남철수 장면에서 미 10군단장 에드워드 앨먼드 소장에게 피란민들을 군함에 태워가자고 간곡히 설득하고 있다. ‘국제시장’ 화면 캡처
토머스 퍼거슨 예비역 대령(72)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흥남철수 당시 배에 실어야 할 무기를 버리고 피란민 1만4000여 명을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태우기로 결정한 당시 미 10군단장 에드워드 앨먼드 소장(1892∼1979)의 외손자. 퍼거슨 예비역 대령은 영화를 본 뒤 “외할아버지(앨먼드 소장)가 생전 참전했던 제1, 2차 세계대전, 6·25전쟁을 통틀어 가장 의미 있는 작전은 바로 흥남철수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며 “미군만 철수한 게 아니라 피란민까지 철수시킨 것은 기적 같은 작전이었다”고 말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1950년 12월 23일 흥남을 떠나 24일 부산을 거쳐 26일 거제도에 도착해 피란민을 내려줬으며 이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도 불린다.

흥남철수 직전 중공군의 남진을 막아낸 ‘장진호전투’에 사병으로 참여한 뒤 흥남에서 철수한 스티븐 옴스테드 예비역 해병대 중장(85)의 감회는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 20세였던 그는 “지금 봐도 전쟁은 정말 생지옥이다. 더군다나 가족과 생이별을 하는 민간인들의 아픔은 형언하기조차 어렵다”며 “덕수가 막순이의 손을 놓치는 장면에선 아무리 참으려 해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는 사람으로 가득 차 누울 공간도 없었는데 정비공들이 지하 벙커에 잠자리를 만들어 줘 무사히 철수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벽안의 참전 용사들은 6·25전쟁 후 1960, 70년대를 거쳐 한국이 기적적인 성장을 이뤄내는 장면을 지켜보며 웃었고, 1980년대 이산가족 찾기 행사를 그린 장면에선 다시 눈물을 훔쳤다. 특히 덕수가 미국으로 입양된 막순이를 찾아내는 장면에서 막순이가 “왜 (흥남철수 당시) 나를 버렸느냐”며 울부짖을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소리 내어 우는 미국인이 많았다. 옴스테드 예비역 중장은 “지금 자랑스럽게 성공한 한국이 존재하는 것은 6·25전쟁에 참전한 군인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그 후에도 오랜 세월 아픔을 겪고 이를 헤쳐나간 한국 국민들의 거룩한 희생 덕분”이라며 “6·25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잊혀진 승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퍼거슨 예비역 대령은 “6·25전쟁과 이후의 한국 역사가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이며 더 많은 미국인이 이 영화를 보고 한국을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르스 콜리바 6·25전쟁 참전 재향군인협회장(85)은 “한국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영화”라며 “한국전에 참전했던 모든 미국인에게 이 영화를 보라고 말하겠다. 매우 자랑스러워할 것 같다”며 눈물을 닦았다.

지난달 초 미국에서 개봉한 ‘국제시장’은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에서 상영돼 개봉 5주 만에 200만 달러(약 21억8000만 원)의 흥행 수입을 거두고 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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