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은위’ 훈작가 “내가 간첩이 아니냐고?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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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6월 2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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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특수훈련을 통과한 꽃미남 간첩 김수현이 ‘동네 바보’라는 임무를 띠고 남한 최하층 달동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일상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그야말로 은밀하게 위대하게 관객 수 100만 명을 한국 영화 사상 최단기간 기록을 세우며 돌파하더니 18일만에 600만 관객도 훌쩍 뛰어넘었다.

이번 영화의 성공으로 김수현, 이현우, 박기웅 등 주목받고 있는 배우들 외에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동명 웹툰 원작자 훈(HUN) 작가다.

동아닷컴 도깨비뉴스는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필명 만큼이나 ‘훈훈’한 외모와 입담을 자랑하는 훈 작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작가가 간첩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질문에는 유쾌한 대답을, “영화의 성공이 시나리오보다 배우들의 팬덤 때문이 아니냐”는 다소 예민한 기자의 질문에는 대인배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다음은 ‘읽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훈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 처음 영화화 하자고 제의를 받았을 때 어땠나.
“연재 중반부터 계속 제의가 있었지만 대부분 사기꾼 같았다. 대형 기획사부터 얼토당토 않은 회사도 있었다.

그런데 뭔가 홀린 듯이 지금의 제작사랑 계약하게 됐다. 상황 자체가 웃기다. 무언가 사줘야 할 것 같고 안타까워 보이는 회사의 이사님이었다(웃음). 그러나 이 사람을 믿으면 자기 콘텐츠처럼 목숨 걸고 영화화 해주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 한 번에 OK했나.
“두 번째 만났을 때 승낙했다. 회사는 이 콘텐츠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나에게는 이것을 영화화 시켜줄 회사가 필요했다. 그 부분에 신뢰가 굉장히 높았다”

- 은밀하게 위대하게, 개봉 전 성공 예감했나.
“예상 못 했다. 우선 배우들의 힘도 있으니까 초반 스타트가 좋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이런 시너지가 나온 건지… 워낙 다들 역할을 잘 해줬다”

- 그렇다면 500만 명은 예상 못 하고 공약을 걸었나.
“그건 아니다. 예상 겸 기대를 하고 걸었다. 잘 되면 시즌2를 해야 하는데, 그 정도 수치라면 즐겁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뭐… 솔직히 그때 즉흥적으로 말한 거긴 하다. 옆에서 배우들이 이상한(?) 공약을 계속 걸더라. 그래서 ‘나도 해야하나’라는 생각에 그냥 말해버렸다(웃음)”

- 연기 조언은 많이 해준 편인가.
“두어 번 정도는 배우들과도 얘기했다. 근데 배우들이 심하게(?) 공부하고 왔다. 특히 수현 씨는 말도 못하게 연구를 해왔더라. 굳이 캐릭터에 대해 말해줄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모든 분들이 그건 인정하고 있는 상태였다.

수현 씨는 비공식적으로도 굉장히 연습을 많이 했다더라. 그 얘기 듣고 감동받았다. 그렇게 까지 연습을 하다니. 흔히들 말하지 않느냐. ‘김수현이란 배우는 타고난 배우다’라고.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연구를 많이 하는 것 같다”

-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해준 배우는.
“우선 말할 수 있는 게 수현 씨 같다. 똥을 쌌는데 뭘 더 바라겠느냐(웃음)”

- 영화 보면서 스스로 박장대소한 부분은 없나.
“똥 참는 거다. 그렇게 나올 줄 몰랐다. (수현 씨가) 그것도 혼자 연습을 많이 했다더라. 그 신에 애착이 강했다고 들었다.

또 의도적으로 넣은 거지만 현우하고 수현 씨와의 미묘한 신이 재밌었다. 난 이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영상으로 보니까 손이 오그라들더라”

-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어떠한 계기로 쓰게 됐나.
“처음엔 스파이물을 짜려고 했다. 근데 재미가 없더라. 식당에서 밥 먹다가 생각났다. 지금 이 건물에 간첩 한 명쯤 있어도 이상할 게 없지 않느냐.

하지만 간첩한테 무거운 임무를 주는 것이 지금까지의 창작물 형태다. 그런 게 아니라 황당하고 웃기고 일상적인 것을 부여해 만들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네 바보’라고 설정했다. 또 똥도 싸게 하고(웃음)”

- 작가가 간첩이 아니냐고 농담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에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 납치되거나 살해된 거라고 생각해달라. 가끔은 무섭기도 하다. 누가 찾아오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을 자주한다. 진짜다(웃음)”

- ‘은위’ 흥행은 팬덤 때문이라는 ‘혹평’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이다. 개봉 전에 시사회 다닐 때 주눅이 들었다. 배우들과 같이 다니면 90%는 10~20대 여성 관객이더라. ‘배우빨(?)로 가는구나. 내가 돌아다닐 상황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봉하고 혼자 극장에 2번 정도 갔다. 상황을 좀 보려고. 일찍 들어가서 앉아 있었다. 당연히 여성 관객이 많을 줄 알았는데 가족 단위 관객들이 오더라. 남학생들이 우르르 오지 않나. 연인,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등 다양한 관객층을 본 후 자신감을 회복했다.

지금 생각하는 건 팬덤은 일리 있다. 팬덤이 40%, 원작 기여도 20~30%, 나머지는 관계돼 있는 회사와 스태프들 덕분이다. 배우들 영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 서수혁 역(김성균)의 비중이 줄어들며 아쉬움을 표하는 팬들도 있고, 영화 연출에 불만을 토로하는 팬들도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 없나.
“캐릭터가 축소된 것은 나도 아쉽다. 방대한 분량을 축소한 건 불가피한 거였다. 몇몇 캐릭터가 축소돼 깊은 인간관계 얘기가 잘 드러나지 않아 많이 아쉽긴 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구성하는 게 최선이었다. 허락하는 상황 하에서는 잘한 거 같다”

- 훈 작가도 팬층이 두껍다. 팬들 활동이 활발하던데.
“제일 힘이 된 건 영화가 나오기 직전까지 기대감을 끌어 올리는 것에 가장 많이 소통을 해준 것이다. 기사 댓글의 10개 중 9개는 원작 이야기였다. 그거 보면서 ‘울컥울컥’ 했다. 당연히 김수현 씨 얘기만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정작 글까지 써가며 활동해주는 사람들은 꼭 원작 이야기를 해준다. 기대감에 대한. 그런 거 때문에 고맙더라. 기대감을 많이 끌어올려 줬다. 개봉 후에 적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 실망을 하면 크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고마웠다”

- 배우들은 1000만 돌파하면 봉구복장으로 무대인사 한다더라.
“나도 시키면 한다. 원래 창피하고 그런 거 없다. 회사에서 시키면 한다. 처음부터 제작사한테도 스케줄이 허락하는 한 영화에 도움 되는 부분은 다 하겠다고 했다. 타이즈도 입을 수 있다”

- 웹툰이 주목 받으면서 부담감도 커졌을 거 같다.
“엄청나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떨쳐졌다. 영화를 원작대로 했는데 실패하면 ‘나는 뭐가 될까. 나는 그대로 그저 그런 가십 만들어내는 만화가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 영화 ‘해치지않아’와 ‘향연상자’가 영화화될 거라 들었다. 맡아줬으면 하는 배우나 생각해둔 배우가 있나.
“‘해치지않아’는 가능하다면 수현 씨가 해줬으면 좋겠다. 찌질한 캐릭터가 나오는데. 해주면 안될까(웃음)”

-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 연재 이후 원고료가 올랐다고 하던데.
“6개월 쉬면 6개월 굶는 시절이었다. 많이 오르진 않고 인정받는 만큼 오른 거 같다. 생활고 걱정 없이 쉬었으면 했다. 그래서 무리해서 일을 하기도 했다”

- 영화 성공으로 생활고 걱정은 덜하겠다.
“부자가 된 건 아니지만, 지금은 고기도 먹고 싶을 때 먹는다(웃음). 7년 전 웹에 왔을 때 받았던 원고료보다 약 15배 정도 올랐다. 그만큼 형편이 없었던 거다. 하지만 시작할 때는 생각할 수 있는 최저 수준을 받았다. 정말 적었다. 원고료가 오르면 다른 것들도 다 오르게 된다”

-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 한 편만 꼽는다면.
“‘해치지 않아’가 제일 애착이 간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이미 내놓은 자식이다. 만들 때부터 기대를 많이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활용 범위가 넓은 콘텐츠를 하나 만들어놓자’라는 목적으로 쓰게 됐다. 나중에 몇 년 후에 어떤 콘텐츠로 나오게 될 지 기대된다”

- 만화에 싸우는 신이 많다고 느껴진다. 학창시절 싸움 좀 하셨나.
“어릴 땐 맞고 다녔다. 중학교 때까지 진짜 왕따였다. 그냥 좀 찌질(?)했다. 일단 반에서 제일 작았다. 덩치도 작고. 키는 고등학교 올라가서 큰 거다. 집에서도 형들한테 맞고, 주눅들어 있었다. 좀 그렇게 살았다”

- 마지막으로 ‘은밀하게 위대하게’ 시즌2에 담을 내용은.
“과거의 이야기를 담을 것 같다. 캐릭터들이 다 살아있진 않고 다른 캐릭터가 나올 것이다. 연관되는 지점들은 있지만 시즌1 캐릭터의 과거가 되진 않는다. 그것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이 또 해주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도 배우들은 똑같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 줄지는 모르겠지만(웃음)”

동아닷컴 도깨비뉴스 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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