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댐의 영화 까대기] 시상식은 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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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8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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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은 하나의, 거대하고 복합적인 버라이어티 쇼에 불과하다!

이 사실을! 더러 순진하거나, 여럿 무지하고, 다수 상관없이, 소수 필사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다만 여타 다른 쇼들과 차별화 되는 점은 심사위원이라는 제법 공공연해 보이는 타짜들이 존재한다는 것일 게다.

그럼 이 거대하고도 복합적이며 버라이어티 해야 할 쇼가 유독 우리나라에선 왜 이리도 재미가 없느냐? 그건 이 타짜들이 눈치를 너무 보기 때문이다. 패를 몰아준다는 얘기다. 그것도 정작 봐야할 대중으로 비유되는 ‘호구’의 눈치가 아닌, 돈댄 사람들 그리고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 흔히 말하는 투자자 주최측 같은 ‘물주’들을 말이다.

즉, 주최측 투자자 눈치 보느라 제대로 된 시상식을 커녕 항상 주먹구구식의, 어디까지나 ‘주어 마땅할’이 아닌 ‘주고 싶은 안달 난’에 얽매인, 시상이 아닌 거래만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항상 조악한 해설과 어수선한 시간대, 행여 수신조차 되지 않는 케이블 방송에서 중계되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나 그래미 시상식 등에서 느껴야 하는 형편인 것이다.

그럼 흔히 비교되는 아카데미와 우리나라 시상식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공정성? 틀렸다!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왜 공정하지 못한가가 아니라? 왜 이리도 영리하지 못한가로?
또는 왜 이리도 공정하게 보이지 못하느냐로! 말이다.

이 말은 단순한 조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조성이나 구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잘나가는 영화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는 만큼 보태어져야할 저예산 영화의 지원도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또 의외성이나 상식외의 깜짝쇼도 엄연히 한통속으로 진행되어야 할 쇼의 구성원에 속해 있다.

이것에 대한 가장 적합하고 통합적인 예로는,
71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받은 ‘로베르토 베니니’(인생은 아름다워)를 들 수 있는데, 그때 당시의 후보로는 미국 그리고 아카데미가 사랑한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톰 행크스를 비롯해 에드워드 노튼(아메리칸 히스토리 X), 이안 맥켈런(갓 엔 몬스터), 닉 놀테(어플릭션)같은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대거 포진 하고 있었다.
이것은 자국 외의 배우도 명실공이 최고의 영화 시상식의 주요 부문에서 수상을 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적 환상을 심어주는 동시에 타국에 대한, 이 작은 관심 하나로 몇 배나 높은 자국 영화에 대한 환심과 홍보를 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 공정해 보이는 동시에 의외적이고 상식외의 깜짝쇼란 버라이어티의 요소를 모두 성취 해낸 궁극의 쇼 그 자체라 할 만 하다!


그럼 위와 관련하여, 우리의 잘못된 쇼의 실태와 그에 따른 의문들을 나열해 보겠다.

우선, 왜 영화 시상식에 항상 가수들의 아무 상관없는 유행가가 울려 퍼지는 걸까?
왜 아이돌그룹이 나와 영화배우들 꼬시기 퍼포먼스만 휘저어야 하는 걸까?
이게 왜 영화 시상식에서 자행되어야 하는 걸까?

이것은 가장 싸고 편리하며, 영화제와 별개로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영화 시상식은 대형행사와 다를 게 없다. 체계적으로 시간과 공을 들여 하나로 완성하는 형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어디어디서 모은 조각들을 하나인척 끼워 맞추는 식인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새로운 것을 창작하기보다 있어왔던 공연을 불러들이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반대로 왜 영화 시상식의 사회자는 꼭 배우여야 할까?
그 어색하고 맥이 뚝뚝 끊기는 말솜씨로 대사는 어떻게 그렇게도 또박또박 읊었던 것일까?

이것은 주최측에 성의다. 잘 더듬어 보시라 시상식의 사회자는 누구였던가?
유독 그 매체에, 그 근래 자주 얼굴을 비추는, 흔히 말하는 결탁되어 밀어주는 배우나 절찬리 상영 중인 극중 커플들이었다! 이 얼마나 졸렬한 식상함인가?

왜 항상 내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배우들은 또 영화는 외면당할까?
그리고 그래 또 얘가 받겠지 하는 배우는 예외 없이 수상을 하는 것일까?

심사위원이 안목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저속한 이유가 있다.
알고 보면 좁은 세상 그걸 축소해 논 영화판이라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더 잘 아는 사람, 좀 더 친분 있고 연계되어 있는 사람, 앞으로 자주 볼 사람, 힘 있고 돈 많은 그들에게 그 잘난 아라비아 숫자 몇 개 더 쳐주는 게 어렵겠는가? ‘좋은게 좋은거다’ 영화판이라고 다를 거라 착각하지 말자!

우리는 왜 항상 작은 영화를 응원하기 위한 시상식이 아닌 큰 영화를 추앙하기 위한 시상식이 될까?

이건 협소한 시장규모와 이 시장을 보호해줄 만한 시스템이 없으며 그로인해 영화란 한때(스크린 쿼터가 있을 당시)의 예술 시장이 자본주의 산업 시장으로 변화하며 겪는 과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 영화는 아직도 불안한 성장과정 속에 있다는 의미다.
결국 이것은 아직까진 의미보단 돈을 우선시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것은 하나밖에 보지 못하는 1차원적인 사고와 안목에서 비롯된 불찰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맞다, 모든 것이 돈에 의해 만들어지고 흥하고 망하고 결국 시상대에 오른다.
이렇게만 따지면 돈을 들인 만큼, 들인 애들 위주로, 번호표 뽑아 줄서서 받아가는 대종이의 행태가 백번 옳다. 하지만 영화가 어디 만들어짐에서 끝이 나는 산업인가?
영화는 어디까지나 만들어진 후 보여짐으로 인해서 흥과 패가 갈리는 예술성 짙은 대중적 산업이다. 그럼 이 과정에서 마땅히 지분을 차지해야할 대중의 의견과 바람을 그대들은 어떻게 상장 시킬 것인가? 답은 단순하다. 이제부터라도 대중들을 위한 제대로 된 쇼를 준비하시라! 이상이다. --;

사진|대종상·아카데미 영화제 공식사이트
글|영화평론가 까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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