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지게 짊어진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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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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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뿌리깊은 나무’ 시청률 20% 육박“에라 빌어먹을!” 근엄한 이미지 뒤엎어

SBS 수목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은 농사를 연구하기 위해 농부 차림을 하고 똥지게를 진다. SBS TV 화면 촬영
SBS 수목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은 농사를 연구하기 위해 농부 차림을 하고 똥지게를 진다. SBS TV 화면 촬영
“하례는 지랄… 왕은 뭔 놈의 예식이 이렇게 많은지… 젠장!”

SBS 수목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한석규가 연기하는 세종은 주저 없이 욕을 하고 불같이 화를 내거나 오열하기도 한다. 희로애락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이 같은 모습은 지금까지 자애롭다는 인상으로만 전해져온 성군(聖君) 세종의 이미지를 뒤집는다.

위인전 속 인물이 아니라 옆집 아저씨 같은 이 같은 세종의 모습을 시청자들은 환영하고 있다. 시청자 게시판은 ‘백성에게 다가가려는 인간적 군주’(김정애) ‘권위만 내세우는 지도자가 아니라 백성을 우선 생각했던 인간 세종을 창조했다’(오영훈)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시청률은 첫 회 9.5%에서 6회 18.6%까지 수직상승해 20%대 진입을 앞두고 있다.(AGB닐슨미디어리서치 자료)

○ 똥지게 지고 거름 뿌리는 왕


‘욕하는 세종’은 영화 ‘신기전’(2008년)에도 등장했다. 안성기가 연기한 ‘신기전’의 세종은 무기 개발을 방해하는 명나라에 “육시랄” “염병할”이라고 했다.

‘뿌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세종의 인간적인 모습을 폭넓게 다룬다. “‘우라질’이 얼마나 내 정서를 잘 표현하느냐”며 우리말의 중요성을 역설하는가 하면 농부와 똑같은 차림으로 똥지게를 지고 똥거름을 밭에 뿌린다. 그러면서 “인분이 밭작물을 얼마나 자라게 하는지 알아오라고 지시한 게 언제냐. 이렇게 하지 않으면 관리들이 움직이기나 하느냐”며 복지부동하는 관리들을 욕지거리로 질타한다. “에라 빌어먹을!”

이와 달리 2008년 1월부터 방영된 KBS2 ‘대왕세종’의 세종은 자애롭기만 한 성군이었다. 안으로는 왕권을 강화하고, 밖으로는 중국에 맞서 외교 주권을 다졌으며, 한글을 창제해 문화독립국으로 기반을 세운 업적을 강조했다. 문자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방식도 ‘뿌리…’의 세종과는 달랐다. “말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내 나라의 아름다운 자연이, 노래가, 백성들의 눈 맑은 얼굴이 또렷이 눈에 뵐 듯도 하고 손에 잡힐 듯도 하다”는 ‘왕다운’ 말만 대사에 등장했다.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리더십연구소 연구실장은 “실록에 따르면 세종의 욕설은 ‘용속(庸俗)하다(평범하고 속되다)’가 가장 심한 수준이었고, 화를 낸 횟수도 재임 기간 통틀어 19회만 나타나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시대정신이 바꾼 세종 리더십

정권 초기와 말기의 작품 속 세종이 다른 이유는 드라마가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방영된 ‘대왕세종’은 새 정부에 대한 기대를 반영해 ‘이상적 리더’를 그렸다.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에서 방영 중인 ‘뿌리…’의 똥지게 진 세종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대통령이 저런 마음으로 공무를 봤으면 좋겠다’(윤복현)며 새로운 리더십을 이야기하고 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한국 사극은 시대적 목적에 따라 위인과 영웅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호출해 왔다. 2008년 ‘대왕세종’이 새로운 지도자상을 제시하고 싶은 바람을 담았다면 2011년의 세종에게서는 권위를 세우기보다 백성의 고통을 겪으려 하는, 국민이 바라는 지도자상이 읽힌다”고 분석했다.

장훈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뿌리…’의 세종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필요할 때는 권위를 행사해 존경받는 ‘여우와 사자’로서의 속성을 갖춘 군주”라며 “이는 현재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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