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 한국 프로그램 봇물…“여기가 한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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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3일 1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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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석, 소녀시대, 빅뱅, 한류 컨텐츠 일본 방송시장 장악
●1999년 이케하라 마모루 "30년 뒤나 개방해야" 예측 뒤집어

올해 초부터 일본에서 방영되기 시작한 한국드라마들. 최근 경향은 한류 전문 위성방송이 아닌 공중파에서 한국의 최신 드라마를 방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올해 초부터 일본에서 방영되기 시작한 한국드라마들. 최근 경향은 한류 전문 위성방송이 아닌 공중파에서 한국의 최신 드라마를 방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본 오사카에 사는 기무라 에이코(31) 씨는 최근 NHK에서 재방송중인 드라마 '이산'을 즐겨 본다. 이미 수년간 몇차례 재방송 된 드라마이지만 기무라 씨는 방송 초기엔 접하지 못하고 뒤늦게야 시청하고 있는 것.

이 밖에도 기무라 가족은 NHK에서 방영중인 '나쁜 남자' TBS의 '메리는 외박 중' 후지산케이TV의 '역전의 여왕'와 '커피 프린스'까지도 틈틈이 즐기고 있다. 그녀는 "일본 드라마 보다 오히려 한국 드라마를 더 많이 접할 정도다"고 토로할 정도다.

이제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북미까지 확산중인 한류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은 이제 뉴스가 되지 못하는 시대다. 그러나 최근 대지진과 쓰나미 이후 일본 열도를 장악한 한류의 파워는 일본인들까지도 크게 놀라는 분위기다.

일본 누리꾼들이 일본 공중파의 황금시간대를 장악한 10여개의 한국 드라마를 보고 "여기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모르겠다"는 반응까지 보일 정도. 이 밖에도 한국의 대중가요인 케이팝(K-pop)은 이제 일본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일본의 십대의 문화지도를 바꾸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근석은 '제2의 배용준'으로 일본 젊은 여성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최근 일본의 미디어들은 장근석의 일거수 일투족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장근석은 '제2의 배용준'으로 일본 젊은 여성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최근 일본의 미디어들은 장근석의 일거수 일투족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 '미남이시네요' 3회 재방송도 모자라 리메이크

일본에서의 한류의 위상 변화는 공중파에서 느낄 수 있다.

2010년을 기점으로 한국에서 인기를 끈 거의 모든 드라마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일본 공중파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DATV라는 유료위성방송을 통해 방영되는 것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커다란 환경 변화가 일어난 셈이다.

이 같은 변화의 정점에 서 있는 작품이 바로 2년 전 한국에서 방영된 '미남이시네요'이다. 이 드라마는 국내 방영 당시 10% 정도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거두기는 했지만 경쟁사 대작에 밀려 조용히 퇴장했다.

그러나 일본 후지TV에서 소위 '대박'이 터졌다. 공중파를 통해 두 번이 방영되면서 일본의 10대와 20대 여성에게 한류드라마의 매력을 전파한 1등 공신이 된 것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장근석과 박신혜는 물론이고 드라마 주제곡을 부른 씨엔블루까지도 일본의 톱스타로 떠올랐다.

'미남이시네요'의 인기는 신드롬 수준으로 3번째 공중파 재방송 결정과 함께 심지어 TBS에서는 일본판 리메이크 제작까지 추진 중이다.

특히 장근석의 인기는 지난주 일본의 대표 여성주간지 3곳의 표지모델은 물론이고 그가 발표한 앨범이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뜨겁다. 40대 일본 아줌마 팬을 사로잡은 배용준을 한류 1세대라고 한다면 장근석은 20대 여성에게까지 확장된 한류 2세대라고 불러야 한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이 밖에도 '소녀시대'와 '카라' 등의 걸그룹은 물론이고 '빅뱅' '비스트' 같은 남성그룹도 이미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빅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케이팝(K―POP)의 일본 진출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 방송에서도 일본을 석권중이다. 이들의 라이브 콘서트는 전석 매진도 모자라 이들을 직접 만나기 위한 일본팬들의 적극적인 한국 행도 붐을 이룰 정도다.

■ '맞아죽을 각오하고 쓴 한국비판'…"30년 뒤나 개방해야"

1999년 국내에서 선풍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킨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 이 책에서 저자는 "일본 대중문화를 30년 뒤에나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9년 국내에서 선풍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킨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 이 책에서 저자는 "일본 대중문화를 30년 뒤에나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이 같은 한국문화 컨텐츠의 일본 시장에서의 대성공을 놓고 한국 누리꾼들에게 새삼 회자되는 책이 1999년도에 국내에서 출간된 '맞아죽을 각오로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이란 책이다.

이 책은 26년간 한국에서 생활한 기자출신 이케하라 마모루라는 일본인이 쓴 이 책은 IMF이후 사회 개혁 방안을 놓고 고민하던 한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던지며 커다란 반향을 불어왔다.

한국인의 장점과 단점을 비교적 솔직하게 논평한 이 책에는 은연중에 일본의 우월성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이 일본을 따라오려면 100년이 걸려도 쉽지 않다"고 표현했는데 특히 당시 한국 정부가 감행했던 '일본 문화 시장 개방'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가해 눈길을 끌었다.

이케하라는 이 책에서 "나는 한국이 일본 문화를 30년 뒤에나 개방해야 문제가 없을 것이다"고 생각한다며 "자칫하다가는 압도적인 자본력과 기술력을 앞세운 일본의 문화상품 때문에 한국의 문화산업이 전멸할 우려가 있다"고 전망한 것이다.

그 근거로 일본 방송을 무작정 따라하기 바쁜 한국방송사들의 행태와 기술력을 포함한 뚜렷한 실력 차이를 언급했다. 실제 당시만 해도 거의 모든 문화산업 관계자들이 이케하라와 비슷한 예측을 내놓았고 "잘못된 결정"이라는 비판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문화를 단계적으로 개방한지 13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한국 대중문화가 국내 시장은 굳건히 지킨 채 오히려 일본 시장의 중심부를 장악한 현상이 벌어진 것.

케이블 QTV의 제작기획을 맡은 이문혁 팀장은 "일본의 드라마가 정교하긴 하지만 캐릭터가 약해서 한국 시장에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며 "이제는 오히려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 훨씬 값비싼 값에 팔리고 일본 드라마는 저렴하게 제안이 들어와도 선뜻 구매하기 힘들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2011년은 현재 한-일간의 문화역전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한국 대중문화가 일본 대중문화에 비해 완승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일까?

이에 대해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여전히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고 말한다. 여전히 한국의 공중파에서는 일본의 드라마와 제이팝이 자유롭게 방영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막강한 자본력과 스타파워를 갖춘 일본의 반격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한국의 누리꾼들은 21세기 한-일간의 문화전쟁에서 주도권을 쥐었다는 점에 흥분하고, 일본의 누리꾼들은 TV만 틀면 한국 이야기라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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