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영화 만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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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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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만성 신부전증 이겨낸 임덕윤 감독

‘조금 불편한…’ 영화제서 호평
스태프와 소통하며 화면 구성
자신의 일상 담담하게 그려

시각장애인 영화감독 임덕윤 씨는 “영화를 통해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방법들을 일반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으며 갑자기 누군가 팔을 잡으면 무척 놀라요. 시각장애인을 붙잡기 전에 항상 먼저 헛기침이나 ‘안녕하세요’라는 말로 인기척을 낸 후 잡았으면 좋겠어요.” 김재명 기자
시각장애인 영화감독 임덕윤 씨는 “영화를 통해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방법들을 일반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으며 갑자기 누군가 팔을 잡으면 무척 놀라요. 시각장애인을 붙잡기 전에 항상 먼저 헛기침이나 ‘안녕하세요’라는 말로 인기척을 낸 후 잡았으면 좋겠어요.” 김재명 기자
“지금 내가 영화를 하는 것은 자살에 대한 공포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일 수도 있어요. 눈을 잃고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이전 친구들과 다시 엮어준 것도 영화였어요.”

영화감독 임덕윤 씨(41)는 자신이 연출한 영화를 볼 수 없다. 2004년 당뇨 합병증으로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2006년 몇 차례에 걸쳐 재수술을 했지만 왼쪽 눈마저 잃었다. 만성 신부전증까지 겹쳐 이제는 일주일에 사흘씩 병원에서 혈액 투석을 받고 있다.

그는 6일 만나자마자 뒷면에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방법’이 적힌 명함을 건넸다. 그러며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전날 서울에 올라와 선물받았다는 까만 선글라스도 스스럼없이 벗어 눈을 보여줬다.

그는 1987년 영화 ‘그 마지막 겨울’(1988년)에서 주인공(최민수)의 친구 역할로 충무로에 첫발을 내디딘 뒤 ‘빵아 빵아 빵아’ ‘동거일기’ ‘몸값’ 등 단편을 찍기도 했다.

배우로 감독으로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가던 그에게 실명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의 영화 만들기는 계속되고 있다.

눈을 잃은 뒤 지난해 시각장애인인 자신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단편 ‘조금 불편한 그다지 불행하지 않은 0.24’를 첫 연출했다. 14일 폐막하는 제10회 서울 국제 뉴미디어 페스티벌에서는 이 작품의 업그레이드 버전 ‘조금 불편한 그다지 불행하지 않은 0.43’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영화 제목의 숫자는 영화 완성도에 대한 자신의 평가다. 그는 “지하철역이 마치 ‘도깨비 집’이나 ‘유령의 집’처럼 느껴져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시력을 잃었기 때문에 그의 영화 작업은 다른 감독들과는 조금 다르다. 우선 사전에 스토리를 구성하고 관절이 움직이는 인형으로 동선이나 화면 구성 등을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콘티를 스태프에게 나누어주고 현장에서 다시 카메라 앵글은 물론이고 소품의 재질과 위치까지 세세하게 설명한다. 하지만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는 함께 일하는 스태프와의 ‘신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도 시력을 잃기 전부터 본 친구들이다.

“우리 영화는 감독이 없어요. 현장에서는 신라시대의 화백제도 비슷해요. 한 장면을 찍을 때마다 스태프에게 일일이 ‘난 괜찮은데 넌 만족하느냐’고 묻죠. 모든 스태프가 ‘오케이’ 하면 넘어가고, 한 사람이라도 한 번 더 찍자고 하면 한 번 더 촬영을 하는 거죠. 스태프를 못 믿으면 못 찍어요.”

아무래도 두 눈으로 보지 못한 사물이나 섬세한 장면들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것들이) 두렵지는 않아요. 두려운 사람들은 스태프죠. 스태프는 (내게) 설명을 해줘야 하니까.(웃음) 하지만 영화의 본질은 내가 봤던 세상에서 아무리 변한다 해도 달라지지 않잖아요.”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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