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하정규 칼럼] 잔재미, 클리셰, 짜깁기?…‘의형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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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1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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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대공수사드라마 연상시키는 진부함'"

파면당한 국가정보원 요원 한규(송강호)와 북한의 남파간첩 지원(강동원)의 우정을 그린 ‘의형제’.
파면당한 국가정보원 요원 한규(송강호)와 북한의 남파간첩 지원(강동원)의 우정을 그린 ‘의형제’.

필자가 매우 감명깊게 본 '영화는 영화다'를 만든 감독의 작품이라 해서 나름 설레이며 찾은 영화관. 그런데 이게 뭔가?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동안 여러 한국 영화의 캐릭터와 요소들을 짜깁기한 느낌에 상투적인 클리셰들를 반복하는 데다, 결말은 1970년대 대공수사드라마를 연상시켰다. 게다가 그동안 질리게도 봐왔던 송강호의 캐릭터를 그대로 도용하고, 깊이 없는 캐릭터들에 억지스러운 대사를 갖다 붙인 모양새가 한심했다.

비록 관객들에게 다양한 잔재미를 주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결국 영화의 가장 기초인 '진실성'과 '깊이', '디테일'이 모두 결여된 영화가 '의형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신세대 스파이와 전직 국정원 직원의 동거

남한의 배신 간첩들을 처단하기 위해 북에서 내려온 거물간첩 '그림자'. 그와 접선하는 또다른 젊은 간첩 송지원(강동원). 이들을 붙잡기 위해 끈질기게 추적하는 이한규(송강호)는 전향간첩의 제보로 아파트 단지에서 이들과 맞닥뜨린다. 그러나 필사적인 추적에도 불구하고 이한규는 그림자와 송지원을 놓치게 된다. 이 와중에 이한규는 자신의 공을 무능한 상사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제대로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책을 당하게 된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남북한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등 화해무드가 이뤄지면서 상사의 미움을 산 이한규는 국정원에서 퇴출되고, 흥신소 사장으로 변신해 한국에 시집왔다가 가출한 베트남 여자들을 추적해서 잡아주는 일로 먹고 산다. 경찰의 요청으로 사기결혼을 주선하는 베트남 브로커 두목을 추적하던 이한규는 무능한 부하직원들 때문에 브로커 일당들에게 둘러싸여 위기에 처한다. 이때 나타나서 뛰어난 싸움실력으로 이한규를 구해주는 송지원.

어렴풋이 그의 얼굴을 기억하던 이한규는 송지원의 정체를 모르는 척하면서 무능한 부하직원들을 해고하고 싸움 잘하고 유능한 송지원에게 스카웃을 제의한다. 이때부터 이 두 남자는 오피스텔에서 함께 기거하면서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하면서도 베트남 여성들을 잡으러 다니는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한규는 송지원의 정체를 모르는 척하면서 자신이 운영하는 흥신소 직원으로 채용한다.
한규는 송지원의 정체를 모르는 척하면서 자신이 운영하는 흥신소 직원으로 채용한다.

▶ 일관성과 깊이가 결여된 캐릭터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의 가장 기본은 캐릭터의 일관성과 깊이, 그리고 공감성이다. '의형제'는 이런 기본을 무시함으로써 가장 기초적인 부실을 드러낸다.

주인공인 이한규는 그림자와 송지원을 추적하는 초기에는 출세욕도, 범인을 추적하는 의지도 강한 집요한 형사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국정원에서 ¤겨난 뒤 도망친 베트남 여자들을 추적하는 흥신소 사장의 역할에 이르러서는 돈만을 쫓아서 약은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더 어수룩하고 무능해서 코믹한 시골형사 캐릭터로 변신한다. 혼자서 송지원을 잡는 연습을 하다가 스스로 수갑을 채우는 부분에 가서는 억지스러울 정도의 슬랩스틱을 보여주더니, 마지막 결투씬에 이르러 송지원에게 그림자의 존재를 알려주며 도망가라고 말하는 역할에 있어서는 순수한 인간미와 의리로 가득 차 있다.

결국 이 캐릭터들은 초기에는 '추격자'나 '공공의 적'의 집요한 형사 이미지, 중간에는 '살인의 추억'과 '놈놈놈'에서의 코믹한 송강호 이미지, 마지막에는 영화 'JSA'의 결투장면에서 남한병사들을 구해주는 인간미 있고 쿨한 송강호의 이미지를 순차적으로 결합한 결과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 송강호는 코믹성과 인간미만을 강조하면서 기존 영화들의 송강호 이미지를 결합시키는 데만 급급해 영화 고유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진실성과 깊이가 결여되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스테리하면서도 우수에 차 있는 송지원의 캐릭터도 공감성이 부족하다. 송지원은 유능하면서도 한편으로 인간미를 갖춘 스파이로 등장하는데, 송강호에게 고용되고 나서는 베트남 여성들의 인권을 중시해서 송강호와 갈등하고, 자신과 동료를 배반한 동료 간첩을 찾아내 보복을 하면서는 의리를 중요시한다.

즉, 송지원은 쿨하고 유능하고 인간미와 의리를 갖춘 나름대로 멋진 캐릭터로 등장하고 강동원은 그런 이미지를 잘 소화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캐릭터는 너무 이상적이고 상호모순적이고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냉혈이면서 조직과 의리에 충실한 간첩이 흥신소 직원이 되어서는 베트남 여성의 인권을 위해 수갑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고 폭력남편에 시달리는 여성을 놓아줄 것까지 요구하는 것이 너무 억지스럽다.

그리고 북한에 있는 가족을 남한으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적인' 면도 깊이가 없다. 가족에 대한 구체적인 스토리는 없이 영화 말미에 북한풍의 황량한 시골에서 웃으며 손 흔드는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아이의 장면은 마치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를 연상시킬 만큼 진부하다. 즉 송지원의 캐릭터는 냉혈이지만 인간적인 스파이의 이미지를 이상적으로 결합시킨 것으로, 구체성과 현실감은 없는 캐릭터가 되어버린 것이다.
송지원의 캐릭터는 냉혈이지만 인간적인 스파이의 이미지를 이상적으로 결합시킨 것으로, 구체성과 현실감은 없는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송지원의 캐릭터는 냉혈이지만 인간적인 스파이의 이미지를 이상적으로 결합시킨 것으로, 구체성과 현실감은 없는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 식상한 조연과 부실한 단역들

조연들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무능하면서 자기 공만 챙기려는 국정원 간부(최정원), 코믹하도록 무능한 송강호의 부하들, 베트남인 브로커두목(고창석), 북한에서 전향한 통일연구원 간부, 끝까지 냉혹하고 잔인한 '그림자'(전국환)에 이르기까지 캐릭터들은 모두 특정한 역할에만 충실할 뿐 진부하고 깊이가 없다. 특히 국정원 간부나 베트남어를 구사하는 조직두목의 경우, '추격자'나 여타 영화들에서 보여준 비슷한 역할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온 느낌이어서 더욱 식상하다. 더욱이 이들이 말하는 대사도 별다른 독창성과 현실감이 없다.

단역들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특히 이 영화에 출연하는 가출 베트남 여성들은 심각할 정도로 무표정해서 아무런 훈련도 없이 거리에서 바로 가져다 쓴 느낌이다. 잘 만든 영화를 위해서는 단역조차도 캐릭터와 연기가 살아 있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요즘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물 정도의 부실함을 보여준다.

가장 우스꽝스러운 것은 '그림자'의 캐릭터다. 이 영화에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맹목적으로 충실하면서 냉혈하고 용의주도한 인물로 나오는데, '그림자'라는 닉네임이 연상시키듯(낯익어서 찾아보니 실제로 70년대 라디오 반공드라마의 제목이었다) 1970년대 대공수사드라마의 대표적인 악역을 연상시킨다.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이 반공드라마의 스토리는 항상 남한에서 활동하면서 자수를 고민하는 간첩과 이들을 감시하고 협박하는 '그림자'같은 냉혹한 간첩들간의 갈등의 와중에 대공수사기관이 이들을 추적하면서 한편으로 자수를 회유하는 내용이었다. 결국 이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선전하는 냉전시대의 반공물이었다.

이런 상투적인 북한 간첩의 이미지를 바꾼 것은 1990년대 최초의 한국판 블록버스터라 할 수 있는 '쉬리'부터인데 이때부터 간첩들은 맹목적인 공산주의자이기 보다는 '테러리스트'의 이미지가 강했고 이것이 신선함을 불러왔다. 특히 북한인들을 오히려 남한 사람들보다 더욱 인간적이거나 매력적이거나 세련된 스파이나 테러리스트의 이미지로 묘사하면서 이러한 분위기는 'JSA', '태풍', 최근의 TV드라마 '아이리스'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의형제'도 이런 분위기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 말미로 갈수록 남한 당국에 자수하고 싶지만 가족문제로 고민하는 송지원과 이런 전향 간첩들을 응징하는 철저하고 냉혹한 공산주의자인 '그림자'가 충돌하는 모습은 시대착오적인 반공수사극을 너무 많이 연상시켰다.

▶ 잔재미만 살린 부실한 스토리와 대사

결국 이 영화는 북한에서 파견된 유능하면서도 인간적인 신세대 스파이와 전직 국정원 직원이지만 흥신소 사장으로 변신해 돈벌이에 급급한 두 사나이가 갈등과 협력을 해가는 과정을 통해 싹트는 의리를 보여주는 영화다.

그러나 스토리에 등장하는 요소들은 대부분 이미 많이 사용된 소재다. 전직 불량 형사 캐릭터도 진부하고, 외국인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것도 요즘 흔한 내용이다. 로드 무비 형태의 두 사나이간 갈등과 남북한간의 갈등 요소도 전혀 새롭지가 않다. 물론 이런 소재들을 가지고도 더욱 깊이 있고 특이하고 현실감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면 좋았겠지만, 이 영화는 결국 이런 저런 흥행 요소들을 결합한 짜깁기 느낌을 줄 뿐이다.

여전히 대한민국 대표 캐릭터인 송강호와 최근 떠오르는 강동원의 연기력과 매력은 뛰어나다. 그런데도 이런 매력이 캐릭터 자체의 현실성 결여와 부실한 스토리, 조연, 대사들로 인해 빛이 바래고 있다. 이는 대중오락물이든, 보다 심각한 예술영화든 간에 영화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위스키를 마시면 촌스럽고 와인을 마시면 세련되다'고 말하는 강동원의 마지막 대사에는 어이가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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