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수 “요즘 일부 연예프로그램 낯 뜨거워”

  • 입력 2009년 6월 19일 18시 42분


나이어린 방송 작가들은 배철수 씨를 ‘아저씨’라고 부른다. 그는 독선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젊은 사람들과 최대한 스스럼없이 어울리려고 노력한다. “우리처럼 나이 먹은 사람들이 먼저 젊은 사람에게 다가가고, 눈높이를 맞춰 줘야죠. 저는 그게 제대로 어른 노릇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권위만 강조하면서 ‘요즘 애들 버릇없다’고만 하면 안 됩니다.” 최훈석 기자.
나이어린 방송 작가들은 배철수 씨를 ‘아저씨’라고 부른다. 그는 독선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젊은 사람들과 최대한 스스럼없이 어울리려고 노력한다. “우리처럼 나이 먹은 사람들이 먼저 젊은 사람에게 다가가고, 눈높이를 맞춰 줘야죠. 저는 그게 제대로 어른 노릇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권위만 강조하면서 ‘요즘 애들 버릇없다’고만 하면 안 됩니다.” 최훈석 기자.
국내 대표 장수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 진행자 배철수 씨는 1990년 3월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오늘도 마이크 앞에 서고 있다. 지난 달 방송 7000회를 넘긴 그는 숱한 개편에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단 한 번도 방송을 '펑크' 낸 적이 없을 만큼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해왔다. 청취자의 기호와 취향이 급변하고 있지만, 만 56세로 예순을 바라보는 그가 건재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5일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기사 전문은 DBR 36호(7월1일 자)에 실려 있다.

●"호칭 파괴로 젊은 친구와 호흡"

―작가들이 '아저씨'라고 부르던데요.

"제가 1953년생인데 어디를 가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아요. 그 호칭이 너무 싫습니다. 같이 일하는 스태프가 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친구가 저를 모시는 상황으로 변하잖아요. '오빠'가 좋지만 그건 그 친구들이 너무 어색해하고요(웃음). 방송하다 보면 프로듀서, 작가 등과 의견이 다를 때가 많죠. 그럴 땐 젊은 친구들의 의견을 더 많이 들어주려 노력합니다. 우리 방송의 주 청취자인 젊은 세대에게 맞춘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라디오 국 전체에서 저보다 나이 많은 분이 단 한 명뿐일 정도니 젊은 친구들에겐 제가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 와중에 제 주장만 내세우면 그 친구들이 '그건 아닌데요'라고 얘기하기 힘들죠. 그렇게 되면 방송이 독선적으로 흐를 수 있고요."

―젊은 세대의 의견이 다 마음에 들지는 않을 텐데요.

"제 또래 친구들은 '(SBS TV '패밀리가 떴다' 프로그램을 염두에 둔 듯) 애들이 밥 짓고 노는 게 뭐가 재미있다고 TV에 매일 그런 프로그램만 나오냐'고 해요. 그럴 땐 답답해요. 그 프로그램을 제대로 보지 않고 그런 말을 하는 게 뻔히 보이니까요. 그 안에 인간관계의 역학 관계가 다 담겨 있는데 자세히 보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나이 드신 분들은 자신도 젊은 시절이 있었을 텐데 '요즘 애들 버릇없다'고만 하죠. 그런데 언제는 안 그랬나요. 오죽하면 그 옛날에도 벽에 그런 말을 써놨겠어요.

젊음의 본질은 똑같아요. 연애 방식만 해도 과거에는 편지를 썼고, 지금은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지만 담겨 있는 내용은 동일하잖습니까. 젊은 친구들하고 제대로 얘기해보면, 왜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어요. 우리처럼 나이 먹은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다가가야지, 저희가 가만히 있는데 그 친구들이 오나요."

●"요즘 일부 연예프로그램 낯 뜨거워"

―예술성과 상업성의 균형은 영원한 화두입니다. 방송하면서 갈등을 느끼신 적은 없나요.

"대중이 들어주지 않는 방송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대중이 절대적으로 옳은 존재는 아니지만 대중과 유리되어 있다면 아무리 뛰어난 예술도 큰 의미가 없다고 봐요. 물론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 균형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면 모든 뮤지션이 다 성공했겠죠. 어딘가에 둘 모두를 만족시키는 지점이 분명히 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여기가 바로 그 곳이라 말할 수 없기에 예술이 어려운 거죠. 어렴풋이 여기가 그 지점이 아닐까라며 근처를 배회하는 게 저희 임무예요. 저는 운이 좋아 그 근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방송을 20년 했겠죠."

―그간 세계적 뮤지션들을 많이 출연시켰는데 초대 손님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요즘 연예 프로그램을 보면 가끔 낯 뜨거울 때가 있어요. 세계적인 배우, 영화감독, 음악가가 나왔는데 '사랑해요'를 한국어로 해 달라고 부탁하죠. 한국 음식 뭐 좋아하냐고 물어보고요. 그게 왜 궁금합니까. 그 사람의 풍부한 재능과 철학에는 관심도 없고 한국 음식 운운하다니…. 사진작가에게 음식 얘기를 물어보면 뭐가 나오겠어요. 기껏해야 된장찌개, 김치찌개 좋아한다는 정도죠. 최소한 사용하는 플래시의 밝기는 어떤지, 배터리는 얼마나 가는지를 물어봐야죠. 초대 손님을 예술가로 대우하는 일에는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청취자들은 유명인의 신변잡기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데요.

"유명 여배우랑 사귀다가 깨진 뮤지션이 내한했다 치죠. 저도 사람이니까 왜 헤어졌냐고 묻고 싶어요. 하지만 댓바람에 왜 헤어졌냐고 할 순 없잖아요. 얼마나 불쾌하겠어요. '당신 음악이 진짜 마음에 드네요'라는 말로 한참 음악 얘기를 합니다. 그러다 슬그머니 '그 여배우도 당신 음악을 좋아해서 만났던 거냐'고 물어보면 다들 잘 대답해줍니다."

●"내 주장만 내세우면 아무것도 안 된다"

―송골매라는 그룹사운드에서 음악을 시작했는데요. 다른 사람과 의견을 조율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 때 음악한 사람들은 가정과 사회가 내놓은 이들이었죠. 부모님 말도 안 듣고 집을 뛰쳐나온 데다, 그 전에 몸담았던 팀도 여러 번 깨졌던 사람들이 모였으니 얼마나 문제가 많았겠어요. 그런데 너무 문제가 많으니까 오히려 '내 주장만 내세우다간 아무 것도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일찍 했어요. 이쯤에서 물러서야 팀이 안 깨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모였기에 송골매가 좋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축구 할 때 누구나 골을 넣겠다고 나서면 안 되잖아요. 수비수도, 골키퍼도 각자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해야 이길 수 있죠. 요즘도 구창모 씨랑 만나면 서로 '내가 더 많이 양보했다'고 주장합니다.(웃음)"

―수 십 년 음악을 하셨는데 음악 업계나 방송 전반이 어떻게 변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음악을 LP, CD, MP3 중 무엇으로 듣느냐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미디어가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언제나 방송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은 존재합니다. 좋은 콘텐츠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콘텐츠를 전달하는 방식까지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제가 할 일은 콘텐츠를 얼마나 충실하게, 재미있게 만드느냐를 고민하는 거죠. 전달 방식은 기술자나 사업가가 할 몫이고요."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배철수는 누구 ▼

-1953년생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전자공학과 졸업.

-1975년 그룹 '활주로' 멤버

-1978년 MBC 대학가요제 입상

-1979년 그룹 '송골매' 멤버

-1990년~ MBC '배철수의 음악캠프' 진행

-1998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최우수상

-2004년~ KBS '콘서트 7080' 진행

-2004년 한국방송대상 진행자부문 올해의 방송인상

-2008년 KBS 연예대상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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