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100분 토론’ 시청자 의견 조작 논란

  • 입력 2009년 6월 2일 02시 59분


《MBC ‘100분 토론’이 패널들의 토론 중간에 소개하는 시청자 의견 10여 건을 임의로 덧붙이거나 왜곡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MBC는 이와 관련해 5월 21일, 28일 각각 사과와 해명 방송을 1차례씩 했으나 임의로 문장을 추가하거나 없던 말을 덧붙인 구체적인 실태를 보면 비슷한 사례가 되풀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시청자가 언급 안한 문장-표현 삽입해 본뜻 왜곡”

제작진 한차례 사과… 소개글 찾을 수 없는 경우도

‘100분 토론’은 5월 14일 ‘한국사회 진단과 미래논쟁3-보수, 진보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 편을 방영했다. 사회자인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는 프로그램 말미에 시청자 서모 씨가 게시판에 올린 의견이라며 “진보진영이 민주화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방송 후 서 씨는 시청자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린 적이 없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손 교수는 같은 날 시청자 조모 씨가 “진보든 보수든 다 나라 사랑하고…”라고 올린 의견을 소개하면서 진보는 ‘좌파’로, 보수는 ‘수구’로 읽었다. 조 씨는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뿐으로, MBC가 보수를 부정적인 의미가 더 짙은 ‘수구’로 바꾼 것은 단순 실수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전면 참여와 남북 관계’(4월 16일) 편에서는 “PSI에 참여해 충돌의 빌미를 만들 필요가 없다.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소개하면서 ‘군사적 긴장’ 부분을 “국지전 발생 소지가 있다”고 과장해 전했다. 같은 날 “PSI 참여는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시청자 의견은 “PSI 체제 밖에 머무르는 것은 국제사회로부터 소외될 것”이라는 등 ‘소외’라는 단어가 추가되기도 했다.

‘법원장 이메일 왜 논란인가’(3월 12일) 편에서는 이모 씨의 글이라며 “집회 시위 사건은 컴퓨터 배당을 자주 한다는데 왜 굳이 보수적인 판사에게 임의배당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을 소개했다. 그러나 이날 이 씨가 올린 글은 “신속한 판결을 독려하기 위해 법원장이 보낸 메일이라면 그 신속함으로 억울한 국민이 생긴다는 것도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요?”라는 글과 “교수님 많이 변하셨네요. 세월이 변하게 하네요”라는 글이 전부다.

‘방송법 어떻게 해야 하나’(1월 8일) 편에서는 시청자 의견에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를 더해 방송법 통과에 부정적인 의견을 강조했다. ‘100분 토론’의 시청자 의견 왜곡 논란은 한 누리꾼이 인터넷 카페 ‘구국! 과격 불법촛불시위반대 시민연대’ 게시판에 ‘100분 토론 날조의혹’이라는 글을 올린 데 이어 주간 미디어워치가 지적하면서 불거지고 있다.

이에 대해 ‘100분 토론’은 21일 방송에서 진행자 발언을 통해 “여러 개의 긴 원문을 요약하는 과정에서 서 씨와 조 씨가 언급하지 않은 문장이나 표현이 삽입돼 두 분의 본뜻이 왜곡될 수 있는 실수가 있었다”며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고 노력하겠다”고 사과했다. 28일에는 시청자 의견 소개를 맡은 배현진 아나운서가 “시청자 의견을 방송한 내용을 조사한 결과 10건 가까이 글쓴이 글과 꼭 같지 않게 방송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시청자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의견을 채택해 소개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내용의 글을 묶어 ‘아무개 씨 외 다수’ 의견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이름으로 소개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100분 토론’이 방송에서 소개한 의견을 게시판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인권위 축소 논란’(4월 2일) 편의 윤모 씨의 “인권위의 축소안이 실현된다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방안도 동시에 강구되어야 한다”는 글과 ‘용산 참사 무엇이 문제인가’(1월 22일) 편에서 김모 씨의 “벼랑 끝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배려하는 맘이 필요한 때다” 등은 게시판과 댓글에서 찾아볼 수 없다. MBC 홍수선 보도제작1부장은 “소개한 글을 찾아볼 수 없는 경우는 글쓴이가 삭제했을 것으로 보지만 시스템상 확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사승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글을 올리는 것은 육성을 그대로 드러내길 원하는 것으로 미디어가 인터넷 사용자들의 의견을 임의로 편집하거나 가공해 아전인수 격으로 쓰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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