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손택균]관객 우롱하는 ‘엉터리 영화 포스터’

  • 입력 2009년 4월 21일 02시 57분


16일 개봉한 영화 ‘매란방’의 포스터는 배우 장쯔이(章子怡)의 얼굴로 가득하다. 포스터와 제목만 보고 영화를 선택한 관객은 두 가지 사실에 당황한다. 주인공 매란방을 연기한 배우 리밍(黎明)은 포스터에서 뒤통수만 보인다는 것. 그리고 장쯔이는 비중이 크지 않은 조연으로 20분 정도만 나온다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개봉한 ‘카오스’도 비슷했다. 액션스타 제이슨 스태덤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스태덤은 영화 중반 폭발 사고로 맥없이 죽은 것처럼 됐다가 막판에 잠깐 다시 등장한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은 포스터 구석에 조그맣게 나와 있던 신참 형사 라이언 필립이다. 스태덤은 팬들이 기대하는 현란한 발차기를 이 영화에서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 마케팅은 관객의 눈길을 끌기 위한 수 싸움이다. 어떻게든 시선을 잡고 봐야 하는 시장에서 약간의 과장이 허용되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장쯔이의 큼지막한 얼굴을 포스터에서 확인하고 매란방 티켓을 산 관객이라면 이런 식의 부풀린 마케팅에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매란방에서 리밍과 장쯔이의 사랑 이야기는 극히 미미한 부분인데도 이 영화는 두 사람의 로맨스 영화인 것처럼 홍보했다.

외화 제목을 번안하는 과정에서도 관객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15일 개봉한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원제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미국 여인 비키와 크리스티나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겪는 별난 로맨스를 그린 코미디다. 하지만 한국 개봉작의 제목은 ‘네 이웃의 여자를 탐하지 말라(1992)’를 연상시키는 끈적끈적한 느낌의 문장으로 바뀌었다. 앨런 파큘라가 감독한 ‘네 이웃의…’의 원제는 ‘Consenting Adults’(음란 행위에 동의하는 성인)로 한글 번안 제목과 다소 의미가 통했다.

영화 내용을 제목에서 드러내려 하다가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을 만들어낼 때도 있다. 16일 개봉한 ‘더블 스파이’의 원제는 ‘Duplicity’다. ‘일구이언’ ‘표리부동’을 뜻하는 이 단어는 영화 속에 두 명의 산업 스파이가 등장한다는 데서 착안해 ‘더블 스파이’가 됐다. ‘이중첩자’를 뜻하려는 것이었다 해도 이에 해당하는 영어는 ‘더블 에이전트(double agent)’다. 더블 스파이는 같은 뜻의 일본식 조어다.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처럼 멋스러우면서 함축적인 번안 제목을 다시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손택균 문화부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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