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는 반짝 성공일 뿐 한숨소리 아직 커요

  • 입력 2009년 2월 12일 02시 55분


《“제작 기간 작업실을 겸했던 반지하 숙소 벽에는 이제 채권자 명단이 적힌 화이트보드가 걸려 있습니다. 아침마다 잠에서 깨어나 20명 정도 되는 그 리스트를 보면서 고민하죠. 영화제 상금으로 얼마나 갚을 수 있으려나 하고요.” 지난달 30일 네덜란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받은 독립영화 ‘똥파리’ 양익준 감독의 말이다. 한국 감독의 타이거상 수상은 홍상수 박찬옥에 이어 세 번째다.》

감독들이 말하는 ‘한국 독립영화의 현실’

독립영화는 메이저 배급사나 제작사의 돈을 쓰지 않고 개인이나 작은 영화사가 적은 예산을 들여 만든 영화를 말한다. 개봉 4주 만에 관객 30만 명 이상을 동원한 ‘워낭소리’의 성공을 계기로 최근 한국 독립영화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미디액트에서 열린 ‘독립영화 감독모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5명의 감독은 “단편적인 성공 사례가 나왔지만 독립영화를 만드는 여건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 커지는 관심, 줄어드는 지원

이날 간담회에는 양익준 감독 외에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 ‘동백아가씨’의 박정숙 감독,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안해룡 감독, ‘할매꽃’의 문정현 감독이 참여했다. 사회는 ‘워낭소리’ 제작자인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총장이 맡았다.

이충렬 감독은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반응을 얻어 영광이지만 요즘 ‘워낭소리’를 둘러싸고 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좋지 않다”며 “의미 있는 성과가 독립영화계 전체에 나쁜 영향을 주면 어쩌나 염려가 된다”고 말했다.

“독립영화가 수익을 내려면 ‘워낭소리’ 같이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얘기를 들으면 가슴 아픕니다.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지원이 갈수록 이른바 ‘돈을 벌 만한 영화’에 집중되는데, 다양한 이야기로 관객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독립영화 감독에게는 가혹하고 슬픈 현실입니다.”

‘워낭소리’는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의 다양성영화 마케팅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4000만 원의 개봉 지원금을 받았다. 해마다 5억 원의 예산을 썼던 이 지원사업은 올해 폐지됐다.

고영재 대표는 “‘워낭소리’의 성공은 다양한 주제와 소재의 영화를 어떻게든 만들 여건이 상당 기간 유지돼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독립영화 지원을 수익성 잣대로 가늠하게 된다면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각광받는 참신한 영화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숙 감독은 “‘워낭소리’ 덕분에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커져서 감사하고 있지만 앞날을 내다보면 암울해진다”며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관객과 만나기 위해서 만든 인디 다큐 영화제도 갈수록 출품 편수가 줄어들고 있고…. 관심은 커졌지만 지원이 줄어드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동백아가씨’는 소록도 한센병 환자를 소재로 3년 동안 촬영해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2008년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올해의 좋은 영상물’로 선정한 영화지만 제작 3년 만에야 겨우 개봉할 수 있게 됐다.

○ 디지털 상영 기반 확충돼야

애써 독립영화를 만들어 놓아도 관객에게 보여줄 극장을 찾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

‘할매꽃’으로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문정현 감독은 “영화 개봉 스크린 수는 영화의 수준이나 관객의 기대치가 아니라 제작 주체가 가진 돈의 액수에 따라 좌우된다”고 말했다.

양익준 감독도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얻은 1억 원 남짓한 돈으로 겨우겨우 영화를 찍고 나서는 다시 개봉을 위해 돈을 꾸러 다녀야 했다”며 “7개월 동안 함께 일한 스태프 급여나 후반작업 비용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이날 감독들은 특히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한 독립영화의 극장 배급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했다. 이충렬 감독은 “수천 만 원을 들여 찍은 독립영화에 필름 하나에 200만 원 정도인 프린트비는 커다란 부담”이라며 “디지털 상영 시설이 없다고 발뺌하다가 이제 100개가 넘는 극장이 ‘워낭소리’ 디지털 테이프를 달라고 전화를 걸어오는 걸 보면 마음이 참 씁쓸하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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