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키아누 리브스 또 지구를 구했다

  • 입력 2008년 12월 23일 03시 07분


‘지구가 멈추는 날’서 외계인 맡아

키아누 리브스가 다시 한 번 지구를 구해냈다. 이번엔 외계인으로서.

24일 개봉하는 ‘지구가 멈추는 날’의 주인공 외계인 클라투(키아누 리브스)는 ‘매트릭스’의 슈퍼맨 메시아 네오, ‘콘스탄틴’의 퇴마사 존을 반복한 낯익은 캐릭터다. 똑같이 단정한 헤어스타일에 검은색 정장. 코트는 벗었다.

어느 날 갑자기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한복판에 커다란 공 모양의 미확인비행물체(UFO)가 내려앉는다. 그 안에서 거대 로봇 ‘고트’와 함께 걸어 나온 외계인 클라투는 지구인들에게 “환경 파괴를 당장 멈추라”고 경고한다.

원작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거장 로버트 와이즈 감독이 1951년 만든 ‘지구 최후의 날’. 리브스가 매니저를 통해 리메이크를 제안했다고 하는데 선량했던 꺽다리 클라투(마이클 레니)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레니의 클라투는 두 번이나 총을 맞고 쓰러져 사경을 헤맨 허약한 외계인이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평화적인 방법으로 지구인과 소통하길 원했다. 하지만 리브스의 클라투는 손끝 하나 까딱하는 것만으로 사람을 죽였다가 살려내고 헬리콥터를 격추시킨다.

원작의 클라투가 걱정했던 것은 전쟁이었다. 그는 “위기에 빠진 지구를 무책임하게 다뤘다간 잿더미만 남을 것”이라는 섬뜩한 연설을 하고 떠났다. 비행접시 주변에 모였던 세계 각 나라 대표들은 감동하는 눈빛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57년 동안 상황은 훨씬 심각해졌다. 전쟁은 더 잦아졌고 무분별한 자연 개발로 환경은 황폐해졌다. 돌아온 클라투는 이제 ‘과연 지구에 인류가 필요한가’를 고민한다. 얼굴에서는 미소가, 손끝에서는 동정심이 사라졌다.

“지구는 인간의 별이 아니야. 인간이 죽으면 지구는 살 수 있어.”

우주적 입장에서 지구를 걱정하는 클라투의 시선에는 섬뜩한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영화의 헐거운 짜임새는 그 논리를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한 인상을 준다.

지구를 덮쳐오는 UFO를 발견한 미국 행정부가 전 세계의 과학자를 소집하는 초반부는 ‘아마겟돈’이나 ‘딥임팩트’를 연상시킨다. 주어진 시간은 78분. 하지만 숨 막히게 돌아가는 상황을 박진감 있게 그린 두 영화와 달리 ‘지구가…’는 김빠진 과학다큐멘터리처럼 흘러간다.

영화는 파괴적인 힘을 지닌 로봇 고트를 통해 파멸을 부를 만큼 위협적인 대상은 거대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요한계시록의 재앙을 미리 훑어보면 상상이 시각화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1996년 ‘트위스터’ 이후 드물었던 장관이다(12세 이상 관람 가).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자료 제공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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