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에 담아둔 내마음 간직해줘”

  • 입력 2008년 5월 2일 08시 32분


바야흐로 소녀 시대다. 소녀는 순수의 모티브, 떨림의 대상이다. 특별히 보여주지 않아도, 보여주는 것보다 더 찬란한 빛을 발해 눈에서 아른거리는 존재 ‘소녀’다. 가요 무대에서는 ‘소시’(소녀시대)가 뮤지컬 무대에서는 황순원의 ‘소녀’가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뮤지컬은 시골소년과 전학생인 서울소녀의 첫사랑을 그린 황순원의 ‘소나기(1953)’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공연은 첫사랑 소녀를 회상하는 청년의 노래로 시작된다. 소녀에게 받은 조약돌을 쥐고 있던 청년이 자기의 유년 시절, 첫사랑의 세계를 들려준다.

잠시라도 영원토록 함께 할 수 있다면

조약돌에 담아둔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 텐데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해 우리 함께했던 그 순간

영원히 지켜 갈 거야 너와 나의 작은 소원

<‘소나기’중에서 ‘조약돌’- 소년의 솔로 노래>

뮤지컬 ‘소나기’는 원작 소설을 그대로 많이 살렸지만 결정적인 소재는 조금씩 변형했다. 특히 뮤지컬의 중요한 제재는 ‘조약돌’이다. 소녀는 조약돌을 집어 들고 각자의 소원을 빌기로 하고, 그 조약돌을 서로 교환한다.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는 서로 말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애틋하고 소중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할 때 소녀는 조약돌로 마음을 대신한다. 그리고 죽기 전 날 ‘그 때 빌었던 소원’은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며 조약돌을 돌려주고 떠난다.

귀엽고 앳되지만, 어딘지 ‘잔망스러운(맹랑한)’ 구석도 빠지지 않는 게 어릴 적 첫사랑이다. “얘, 너 저 산 너머에 가본 적 있니? 우리 가보지 않으련? 왠지 오늘은 집에 들어가기 싫다.” 세련된 서울 말씨의 도시 소녀가 순박한 시골 소녀의 마음에 잔물결을 만들고, 둘은 우정과 사랑을 동시에 나눈다.

빅뱅 ‘승리’의 뮤지컬 데뷔작으로 화제를 모았고, 승리가 출연하지 않는 날에도 초,중,고등학생의 관객이 많다. 소녀가 죽고 소년이 그 집 앞에 멍하니 서있을 때, 객석 곳곳에서 관객들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계속된다.

‘소나기’는 중학교 1학년 2학기 교재에 실린 소설이다. 어른들은 잠시라도 학생의 심정으로, 자녀의 심정으로 돌아가 10대의 감성을 이해하기에 좋은 작품이다. 가슴 떨리던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무대 위로 쏟아지는 시원한 소나기를 감상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소녀가 수줍은 소년에게 던지는 말은 원작에서는‘이 바보’이지만, 뮤지컬에서는 ‘겁쟁이’로 살짝 변했다. 소나기가 내린 날, 소년에게 업힌 소녀가 그 날 입은 옷을 함께 묻어달라고 말했던 유언은 뮤지컬에서는 빠졌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여주인공 전지현이 아예 남자와 함께 묻어달라고 말하던 코믹 변형에서 청순한 뮤지컬 가사에 이르기까지 ‘소나기’는 끊임없이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도 첫사랑의 순수한 감정만큼은 녹슬지 않고 계속 표현되고 있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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