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균의 必聽음악실]가요와 Soul ‘환상적 버무림’

  • 입력 2008년 3월 31일 08시 53분


2000년대, 밀레니엄 시대 가요 시장은 대변혁을 겪고 있다. 음반에서 음원의 시대로 단절적이고 급속한 전환이 벌어지고 있다. 대세의 지위는 음원이 점점 더 차지하지만 그럴수록 좋은 음반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음반은 음원이 줄 수 없는, 좋은 노래들의 알찬 패키지를, 수록곡의 상호작용에서 빚어지는 멋진 장편 스토리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가요 웰메이드 음반은, 여전히 혜성처럼 이따금 등장해 음악팬들을 설레게 하지만 음원의 시대라는 환경적 제약으로 인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고 있다. 후세에 의해 명반으로 평가될 가능성을 지닌, 21세기의 웰메이드 가요 음반들을 만나본다. 웰메이드 음반. 음악성을 통한 비평가들의 고른 지지와 대중들의 사랑을 동시에 이끌어 내는 앨범. 히트곡보다 수록곡 전체로 기억되고 그 가수가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음악적 개성까지 뚜렷한 음반. 2000년대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이런 음반으로 기억되는 앨범 중 하나가 바비킴의 ‘Beats Within My Soul’(2004)이다. 미국 교포인 바비킴은 1993년 ‘닥터레게’라는 그룹의 멤버로 한국에서 데뷔했다. 이후 정통 흑인음악이라는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고집하며 ‘힙합의 대부‘라는 칭호를 얻긴 했지만 삶은 고달픈 ‘저주 받은 예술가‘의 길을 걸어야 했다.

영어 교재 테이프 녹음, 어린이 프로그램 MBC ‘뽀뽀뽀‘ 영어 코너 진행 등 생활을 위해 노래가 아닌 ‘외도’도 해야 했다. 이런 ‘생계유지’ 활동과 다른 가수들의 프로듀싱을 병행하면서 버텨낸 11년 세월은 마침내 솔로 2집 앨범 ‘Beats…’에 와서 완벽하게 숙성된 음악성으로 승화됐다.

음반은 은지원과의 대화로 시작되는 ‘Intro’를 거쳐 그루브한 반복이 매력적인 ‘Running Man‘, 맥주 광고 삽입곡으로 사랑 받은 ‘It’s alright it’s all good’, 타이틀곡 ‘고래의 꿈’으로 이어진다. 전 수록곡이 흑인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흥겨움과 귀를 사로 잡는 대중적인 멜로디의 웰메이드 조합이다.

이 음반은 흔히 ‘정통 흑인 음악의 명반’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앨범이 지닌 가치의 절반만을 말하는 것이다. 바비킴 솔로 2집의 또 다른 매력은 ‘미국 흑인 음악(솔 음악)과 한국 대중 가요의 완벽한 결합‘이다.

2004년 최고의 발라드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마지막 곡 ‘Let Me Say Goodbye’를 들어 보면 흔히 ‘뽕 발라드’라고 부르는 한국 발라드만의 특질이 드러난다. 바비킴은 “정통 흑인 음악이라 추켜 세워주는 분들이 있는데 굉장히 무안하다. 사실 음반 곳곳에 가요적인 요소들이 많이 담겨 있다”고 밝힌 바 있다.

‘Beats…’을 정통 흑인 음악으로 오인하는 결정적 원인은 바비킴 자신이 제공하고 있다. 필(feel)을 중시하는 바비킴의 노래 스타일은 독특한 음악적 개성을 곡에 부여하고 음악에 솔(soul)의 느낌이 충만하게 만든다. 이러다 보니 멜로디나 코드 진행에 한국적인 요소가 있어도 곡 자체를 완전히 ‘물 건너온’ 음악처럼 들리게 한다.

바비킴의 음반을 기점으로 드렁큰타이거, 에픽하이, 리쌍, 다이내믹듀오 등 힙합 가수들의 앨범이 ‘홍대 클럽용 음악’에서 벗어나 음반 판매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는 시대가 열렸다.

또한 이 음반은 발표 3개월 내에 승부를 봐야 한다는 조급증에 매여 있는 한국 음악시장에 만나기 힘든 스테디셀러로 지금까지도 매 달 수백 장씩 음반이 팔리면서 ‘좋은 음악은 오래 사랑 받는다’는 진리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최영균

스포츠지 대중문화 전문 기자로

6년간 음악과 영화에서 열정을 불태우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뛰어든 몽상가. 지금은 이른바 ‘킬러 콘텐츠’를만든다며 매일 밤 담배와 커피를 벗삼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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