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그녀의 ‘수난동화’…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 입력 2007년 4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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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다. 중학교 교사였던 여자가 남자 때문에 인생이 꼬이기 시작해 가출하더니 폭력남과의 동거, 유부남과의 불륜을 거쳐 창녀로 전락하고 살인자로 교도소까지 갔다 온다. 그래도 정신 못 차리고 또 남자한테 매달리며 울고불고하며 살다가 어이없는 죽음을 맞는다. 짜증난다고? 천만에. 이런 통속적인 줄거리로 이만큼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고, 모두가 ‘혐오스런 마츠코’라 불렀던 그 여자가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였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거다.

12일 개봉하는 일본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15세 이상·사진)은 ‘불량공주 모모코’로 잘 알려진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이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만든 코믹 뮤지컬이다. 백수 청년 쇼(에이타)가 아버지의 부탁으로 얼굴도 모르는 고모 마츠코(나카타니 미키)의 유품을 정리하러 그의 아파트에 갔다가 그 파란만장한 인생의 궤적을 따라가는 게 기둥 줄거리다.

원작은 내용만큼 무거운 분위기였다. 그러나 영화는 판타지의 세계를 표현하는 총천연색의 ‘키치’ 영상에 유치하게 과장된 행동과 대사, 흥겨운 노래와 춤으로 ‘지지리 궁상’인 마츠코의 일생을 한 편의 경쾌한 동화나 만화처럼 보이게 한다. 어두운 내용을 상반되는 느낌의 형식으로 포장한 감독의 능력이다. 이 영화로 일본의 여우주연상을 몽땅 휩쓸었다는 나카타니는 관객을 웃겼다 울렸다, 쥐락펴락한다.

마츠코는 주체적이지 못하고 남자에게 인생을 거는 1970년대 호스티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캐릭터다. 그의 친구는 ‘홍도(홍도야 울지 마라)’와 ‘영자(영자의 전성시대)’, 주제가는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라고 생각하면 ‘딱’ 이다.

그러나 마츠코는 남자를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한 여자였다. 배신당하거나 사랑하는 남자가 죽었을 때 “인생이 끝났다”고 하더니, 어느 순간 또 사랑에 빠져 신나게 노래 부른다. 그는 사랑 자체에서 삶의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었다.

영화 중에 마츠코의 사랑이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는 신의 사랑’이라는 대사도 나오지만, 그는 영화 속의 덜 떨어진 남자들을 사랑으로 구원하러 온 천사 같다. 영화는 ‘인간의 가치는 그가 무엇을 받았는가가 아니라 누구한테 무엇을 해 줬느냐에 있다’고 강조한다. 마츠코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잘 모른 것 같아 아쉽지만, 그는 평생 사랑만 했으니 나름대로 행복했을 거다. 이리저리 머리 굴리며 상처받을까 두려워 사랑을 거부하는 이들보다는 훨씬 더.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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