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끝, 사랑 시작?…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박찬욱

  • 입력 2006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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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박찬욱 감독. 이번엔 딸과 함께 보며 웃을 수 있는 ‘일종의’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다. 홍진환 기자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박찬욱 감독. 이번엔 딸과 함께 보며 웃을 수 있는 ‘일종의’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다. 홍진환 기자
박찬욱 감독이 로맨틱 코미디를 한다고? 처음엔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갑자기 잔혹한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하며. 그런데 12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걸 보니 이번엔 진짜 다른가 보다. 다음 달 7일 개봉하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자신이 싸이보그라고 믿는 소녀 영군(임수정)과 남의 특징을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순(정지훈·비)이 ‘신세계 정신병원’에서 만나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15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박 감독은 이 영화가 ‘일종의’ 로맨틱 코미디라고 규정했다.

“앞에 ‘일종의’라고 붙인 건, 로맨틱 코미디가 맞긴 한데 남녀가 만나서 싸우고 사랑하고 알콩달콩 사귀는 흔한 얘기는 아니니까. 보고 나서 ‘이게 로맨틱 코미디야?’ 하고 화내지 마시라는 의미에서 붙인 거죠. 도망갈 구실을 만든 거지. 편리한 말이죠? 앞으로 모든 영화에 이걸 붙이려고요. 차기작 ‘박쥐’는 흡혈귀 얘기니까 ‘일종의’ 공포영화죠.”

그는 이번 작품이 ‘단추 풀고’ 딸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했다.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으로 ‘어둡고 음습한 사람일 것’이라는 오해도 많이 받지만 그는 해외 영화제에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데리고 다니는 자상한 아빠다.

“전 너무 평범한 사람이에요. 오히려 그런 성격이라 두드러져 보이고 싶은 욕망이 많아서 그런 영화를 보기 좋아하고 만들어 온 것 같아요,”

영화는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하지만 침울한 공간이 아니고 밝은 파스텔톤의 생기 있는 정신병원이다.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상상력으로 만든 공간. 그는 서로 다른 이유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자신이 창조한 세계 안에서 사는 공간이 정신병원이라 봤고 ‘그들만의 소우주 사이에 교집합이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으로 이 영화를 시작했다. 또 ‘친절한 금자씨’를 끝낼 즈음, 그는 몸에서 총알이 나오는 소녀의 꿈을 꿨다. 손가락 마디가 꺾이면서 그 단면이 총구가 되고 허벅지 안쪽에 탄창을 넣으며 총알을 발사하면 턱이 분리되면서 탄피가 쏟아져 나오는 싸이보그 소녀였다. 두 가지 상상이 합쳐져 영화의 바탕이 됐다.

어쨌든 이번엔 증오가 아니라 사랑을 말하는 영화다. 그래서 그는 더 힘들었다.

“증오는 쉽게 설명되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아요. ‘지상 최고의 가치’라고 하는 사랑인데, 다들 너무 쉽게 사랑을 말해서 사랑이 닳고 닳았잖아요. 위선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랑을 그리는 건 어려워요.”

그가 좋아하는 사랑 이야기는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와 프랑스 감독 클로드 소테의 모든 멜로드라마, 그리고 알 파치노와 미셸 파이퍼가 나온 ‘프랭키와 자니’ 등이다.

시나리오는 정서경 작가가 썼지만 ‘친절한 금자씨’에서 “너나 잘하세요”처럼 유행 대사는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이번 유행 예감 대사는 “희망을 버리고, 힘냅시다”.

“흔히 좌절한 사람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하지만 잘 된다는 보장은 없는 거니까, 위선적인 말일 수 있잖아요. 그렇다고 죽거나 밥 안 먹으면 안 되죠. 희망은 없지만 힘을 내서 꾸역꾸역 살아보자는 의미예요.”

영화에서 영군은 자기가 왜 만들어졌는지 궁금해 한다. 기계라면 제조 목적이 있을 게 분명하니까. 그렇지만 박 감독이 말하려 하는 존재의 목적은 ‘존재 그 자체’다. 그래서 희망이 없어도 힘들어도, 우리는 그냥 존재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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