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만, 스튜디오서 자막색깔까지 지시”

  • 입력 2006년 8월 1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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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홍보 라인 실세들의 압력으로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고 밝힌 장동훈 전 영상홍보원 원장. 장 전 원장은 “이백만(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당시 국정홍보처 차장이 프로그램을 이런 식으로 해라는 등 직간접적으로 지시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국정홍보 라인 실세들의 압력으로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고 밝힌 장동훈 전 영상홍보원 원장. 장 전 원장은 “이백만(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당시 국정홍보처 차장이 프로그램을 이런 식으로 해라는 등 직간접적으로 지시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정무직도 아닌 임기제 공모직 영상홍보원장에게 사표를 종용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4일 저녁 서울 시내 한 맥줏집에서 만난 장동훈 전 국정홍보처 영상홍보원장은 비리나 업무 잘못이 없는데도 임기 중 사표 제출을 종용받아 중도 하차한 데 대해 아직도 승복하지 못하는 듯했다. MBC, SBS 기자 출신인 장 전 원장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특보를 지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영상홍보원 원장에 응모한 계기는….

“2002년 대선이 끝나고 몇 개월이 지났는데 영상홍보원이란 곳에서 원장을 공개 모집한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방송사 출신이라 2003년 7월 응모를 했다. 당시는 국정홍보처 국립영상간행물제작소였고 2004년 8월에 영상홍보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서류 전형을 통과하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한 명인가를 제외하고 전부 신문사 출신이었다. 2003년 9월∼2005년 12월까지가 임기였고 잘하면 한 차례 더 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다.”

―사표를 내게 된 경위는….

“지난해 3월에 새로 임명된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나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사무실로 불러 (사표를) 내라고 해서 냈다.”(지난해 2, 3월 사이 정부 홍보 라인은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 조기숙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김 국정홍보처장으로 전면 교체됐다.)

―(김 처장에게) 이유가 뭐냐고 묻지 않았나.

“왜 안 물어봤겠나. 물어봤지. 그랬더니 김 처장이 이 이야기는 우리 둘만 알고 더 말하지 말자고 하며 간단하게 말해줬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내 개인 문제는 아니었고. (김 처장과) 약속을 했으니 (지금도)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며칠 후에 친구를 만났는데 이 친구가 ‘너 이래저래서 그만뒀다면서’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김 처장을 만났느냐’고 물었더니 ‘어제 만났다’고 대답했다. 그냥 웃고 말았다.”

―사표를 내기 전 다른 압력은 없었나.

“국정홍보처에서 영상홍보원의 각종 서류를 가져다 조사한 것을 비롯해 당시 이백만 국정홍보처 차장은 직접 영상홍보원 4, 5급 실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한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직원들이 이를 내게 보고하기까지 했다. 어떤 때는 스튜디오까지 찾아와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막색깔까지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상급 기관인 국정홍보처가 소속 기관에 지시는 할 수 있겠지만 납득할 만한 절차와 과정을 통해야 하는 것 아니냐. 원장을 제쳐 놓고 상급기관 차장의 지시를 직접 받는 실무자들의 입장이 얼마나 난처한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짚이는 점도 없나. 정권 실세들에게 잘못 보였거나 하는….

“마음에 들었다면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있겠느냐. 프로그램 문제라고는 생각하지만 정확히는 모르겠고…. 영상홍보원이 뭐 정부를 비판이라도 할 수 있는 기관인가. 더 칭찬하지 못하면 못했지. 인사문제는 아니었다. 영상홍보원 직원이 100여 명밖에 되지 않아 청탁을 받을 자리도 없다. 노 대통령 또는 청와대 실세들과의 인연은 별로 없다. 그냥 한두 번 밥 먹은 적은 있지만…. 그래도 한 조직의 장인데 그런 취급을 받으면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사표를 냈다.”

―왜 가만히 있었나. 비위 사실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내가 대선 당시 노 후보의 언론특보를 했기 때문에 따지지 않은 것이다(그는 ‘핵심 멤버는 아니었고 적을 걸어 놓은 정도’라고 말했다). 그냥 맘대로 하라고 생각했다. 비리가 있었다면 국정홍보처가 감사를 하고 잘랐겠지. 그런 식으로 그만두라고 하겠나. 내가 아는 친한 실세도 없는데 봐주겠나. 비리가 없다는 부분은 자신 있다.”

―혹시 업무 능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2004년 5월, 2005년 5월(퇴임 후) 두 번에 걸쳐 성과급 보너스를 받았다. 계약직은 그런 것이 있다. 행정자치부가 전년도 업무실적을 평가해서 좋으면 성과급을 보너스로 주는 것이다. 두 번 다 최고 등급인 ‘베스트’를 받았다. 아마 19∼20%의 보너스를 받은 것 같은데 각각 1200만 원 정도였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만두기 전에 노 대통령이 영상홍보원을 극찬한 적이 있다. KTV가 잘하고 있다고. KTV를 보라고. 그때 홍보수석실에서 전화가 와서(누가 전화를 걸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성과가 좋은데 대통령과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나, 대통령이 영상홍보원을 직접 방문하는 것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하더라. 뭐라 말하기 어려워 대답을 안 했는데 결국 흐지부지됐다. 내가 일을 못 했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나.”

―임기가 보장된 공모 원장을 그만두게 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영상홍보원장은 임명직이 아니다. 공모하는 자리고 소신껏 일하기 위해 임기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중간에 위에서 그만두게 할 것이면 왜 임기를 보장한 개방형 공모직을 두나. 차라리 임명직으로 하지.”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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