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KBS 부실, 국민이 덤터기 쓸 수 없다

  • 입력 2005년 10월 5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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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사들이 정연주 사장에게 영국 BBC나 일본 NHK 같은 대규모 인력 감축을 요구했다. 지난해 638억 원의 적자를 낸 KBS가 마련한 경영혁신안이 비정규직만 줄이는 것일 뿐 실질적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내부 감사팀까지 혁신적 구조조정을 건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MBC가 650억 원, SBS가 359억 원의 흑자를 낸 것과 딴판으로 KBS만 사상 최대의 적자를 본 것은 부실경영 탓이라는 결론이 난 지 오래다. 그런데도 KBS는 인력과 제작비 절감 등 자구(自救)노력은커녕 TV 수신료를 올릴 궁리만 하고 있다. 지난해 수신료를 80∼140% 인상하고 물가연동제를 도입해 누진효과까지 챙기려 한 사실이 이사회 회의록을 통해 드러났다. 이사회가 무리한 추진에 제동을 걸어 수신료 인상이 어려워지자 KBS는 나랏돈을 요구해 국고 91억 원 등 152억 원을 배정받았다.

TV 수신료는 KBS를 보든 안 보든, 화면이 나오든 안 나오든 어쩔 수 없이 내야 하는 사실상의 세금이 돼 버렸다. 전기요금과 함께 부과하기 때문이다. 국고에서 나가는 돈은 국민의 세금이다. ‘정연주식 경영’이 보여 준 방만과 무능의 대가를 죄 없는 국민이 모두 치르는 셈이다.

7월 정 사장은 노조의 거센 퇴임 압력을 ‘수신료 인상을 통한 고용안정’이라는 노사(勞使) 합의로 막아 낸 바 있다. 그러니 정 사장이 BBC나 NHK 같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내놓을 리 없다. 신뢰를 잃은 최고경영자가 이기적인 노조에 영합하면서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공기업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다.

국민이 그대로 덤터기 쓸 수는 없다. TV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함께 강제 징수하는 방식은 지금 위헌 심판대에 올라 있다. 명색이 국가 기간(基幹)방송이면서 공영성도, 정치적 중립성도 지키지 못한 KBS가 수신료를 강제로 받아 챙길 자격이 있는지 많은 국민은 주시하고 있다. 수신료 강제징수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여부 판단에 앞서 KBS의 부실을 키운 정 사장에 대한 책임부터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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