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영/방송위, 심의기능 포기하나

  • 입력 2004년 6월 18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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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지상파 방송의 선정성 폭력성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기에 덧붙여 시사 프로그램들의 이념적 편향성과 공정성 문제가 잇따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은 4월 11일 총선시민연대의 낙선대상자 명단을 자막 처리해 공정성과 객관성 위반으로 선거방송심의위원회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KBS1 AM 라디오 ‘생방송 오늘’은 2월 27일 당시 열린우리당 중앙상임위원인 김정길(金正吉) 신임 태권도협회장을 인터뷰하면서 김 회장의 총선 출마를 상세히 다뤘다가 ‘경고’를 받기도 했다.

시사 프로그램 편향성 논란의 정점은 탄핵 관련 방송이었다. 한국언론학회는 최근 ‘대통령 탄핵 관련 TV방송 내용 분석’ 보고서에서 PD들이 만드는 시사 프로그램의 편향성이 특히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의 편향성을 견제해야 할 방송위원회의 심의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방송위가 최근 입법예고한 방송심의규정 개정안에서 ‘주의’와 ‘경고’ 조치를 삭제한 것은 사실상 심의 포기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방송위가 올해 1∼5월 지상파 방송사에 내린 징계 71건 가운데 69건이 주의나 경고이고 나머지 2건만 ‘시청자에 대한 사과’ 등 중징계이었기 때문이다. 선거방송과 관련한 징계 30건 중 28건이 주의나 경고였다. 이렇게 보면 앞으로 방송위의 제재가 얼마나 내려질지 의문이다.

방송위는 방송사의 자율심의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방송시간에 임박해서야 편집을 마치는 제작 현실상 이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지난해 10월 송두율(宋斗律)씨 미화 논란을 불러온 KBS1 ‘한국사회를 말한다’도 제작시간에 쫓겨 자체 사전심의를 받아야 하는 규정을 지키지 못했다.

심의규제의 완화 요구를 주도해온 측은 시사 프로그램 PD들이다. 이들은 2월 MBC ‘PD수첩’이 객관적 자료 없이 특정인을 친일파로 몰았다는 이유로 ‘경고’ 조치를 받자 주의와 경고 조치의 삭제를 요구해왔다.

방송위의 이번 조치는 언론학회의 표현을 빌리면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직무유기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이진영 문화부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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