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재호/'실미도'와 총선

  • 입력 2004년 2월 17일 19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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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실미도’ 관객이 1000만에 육박하고 있다. 한국영화의 경사가 분명하지만 영화평론가 조희문 교수(상명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본다. 그는 2월 10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영화는 원래 환상을 파는 것인데 한 편의 영화에 지나치게 몰입함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것으로 우리 사회의 불안이 그만큼 심각함을 뜻한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분석이다. 4800만 인구 중 영화 관람이 가능한 인구를 2000만으로 잡았을 때 그중 절반이 한 영화를 보려고 몰려들었다면 영화의 완성도나 마케팅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1000만 관객 모두가 전쟁영화광이거나, 굴곡진 현대사의 비극 앞에서 ‘우리에게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로 고민하는 사람들은 아니지 않겠는가.

역시 네트워크의 힘이라고 본다. 인터넷 사용자가 3000만(이용률 세계 3위)에 이르면서 어디든 한군데서 “좋더라”는 신호가 울리면 전 네트워크에 순식간에 “가자, 실미도로”라는 식의 사인이 뜨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일산 아줌마 몸짱 신드롬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남이 하면 나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 특유의 쏠림 현상도 가세했을 것이다.

‘실미도’ 관객 1000만은 총선에서 어떻게 움직일까. 지난 대선을 앞두고 ‘붉은 악마’의 사회심리학에 관심을 가졌던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던져야 할 질문이다.

대선 때 한나라당이 ‘붉은 악마’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했더라면 선거 양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작가 이문열씨가 말하는 광장(廣場) 속의 우민정치론(愚民政治論)에 너무 빠져 별의식 없는 젊은이들의 순간적 유희 정도로 봤던 것은 아닐까.

여권은 벌써 ‘실미도’ 관객 잡기에 들어갔다고 한다. 왜 1000만명인가, ‘실미도’를 보고 무엇을 느끼는가, 왜 여성관객들은 눈물짓는가, 그들의 마음을 잡을 전략은 없는가를 놓고 젊은 책략가들 사이에 논의가 분분하다는 것이다.

‘실미도’ 관객은 ‘붉은 악마’와 달리 장년층도 섞여 있으니까 접근법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테마인 ‘이데올로기와 국가 폭력의 잔혹성’은 공통된 재료일 터이다. “국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국가 폭력이 횡행했던 한 시대에 종언을 고하자”는 말처럼 세대를 불문하고 호소력을 갖는 말이 있을까. 여기에 정치 혐오증까지 곁들이면 총선 식탁에 더 이상의 성찬은 없을 것이다. ‘실미도’ 관객의 뇌리에 검은돈으로 얼룩진 정치인의 이미지를 투사한다면 답은 “모조리 바꿔!”가 아니겠는가.

선거가, 인구 1000만이 한 영화를 보기 위해 몰려가는 식으로 치러진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총선은 대선과 달라 면(面)이 아니라 점(點)이다. 한 가지 구호나 색깔로 칠해져서는 안 된다. 행여 그런 시도가 있다면 누군가가 제동을 걸어야 한다. 역시 진정한 보수가 나서야 한다. 국민 절대 다수는 온건하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보수를 지지한다고 확신한다. 한편의 영화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하지 말라. 영화 또한 시대가 만들고 관객에 의해 완성된다. 한나라당이 그 함의를 놓치고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이재호 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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