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무엇이 ‘정순균 파문’ 불렀나

  • 입력 2003년 8월 26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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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한국 언론과 기자들을 비하하는 글을 기고한 정순균 국정홍보처 차장은 국가 망신을 자초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파문이 불거진 직후 본인도 언론인의 명예를 훼손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한 말을 바꾸고 마치 대단한 소신이라도 되는 듯 기고문과 같은 주장을 되풀이 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정 차장은 ‘물러날 이유가 된다면 사임하겠다’고 말했으나 그 뒤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을 말한 것이지, 물러날 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다’라고 태도를 바꿨다. 또 ‘한국 언론은 아직도 부정확한 보도가 많다’며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이에 대해 기자협회가 기자들의 명예회복 차원에서 법적 조치까지 강구하고 나서고 여당 내부에서조차 정 차장을 비판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발언은 상당한 의구심을 자아낸다. 정부는 언론에 대해 ‘밀려서는 안 된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해 왔다. 노무현 대통령도 양길승 대통령제1부속실장 향응사건 때 ‘언론이 두려워 사표를 수리해서는 안 된다’며 수리를 미룬 바 있다. 만약 이런 맥락에서 정 차장이 태도를 바꿨다면 정부는 ‘언론 전체에 대한 명예 훼손’이라는 이번 파문의 본질을 잘못 보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기고문에서 드러난 정 차장의 왜곡된 언론관은 권력 내부에서 보여 온 언론에 대한 시각과 거의 일치한다. 얼마 전 외교통상부의 고위 간부가 ‘기자들에게 술 사주는 것이 정부 부처 공보관의 역할’이라고 망언을 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점에서 이번 파문은 정 차장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으며 정부가 언론에 편향적인 시각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기자들이 정기적으로 돈 봉투를 받아 왔다’고 매도한 정 차장은 근거를 대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사퇴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국민 다수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정부의 언론관에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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