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의 그리스식 웨딩'…“사랑은 문화충돌도 녹여”

  • 입력 2003년 2월 27일 20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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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부재와 저예산영화의 약점을 딛고 미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 사상 최대 흥행 기록을 세운 ‘나의 그리스식 웨딩’. 사진제공 젊은기획
스타부재와 저예산영화의 약점을 딛고 미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 사상 최대 흥행 기록을 세운 ‘나의 그리스식 웨딩’. 사진제공 젊은기획

백인 남자 이안에게 친구가 금발 미녀의 사진을 보여주며 소개시켜 주겠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미 소개시켜준 여자잖아”. “그건 파멜라였고 얜 낸시야.‘ ”다 비슷비슷해.”

결국 이안은 금발 미녀가 아닌, 소수 민족인 그리스계 여성 툴라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쭉쭉빵빵한 ‘금발 미녀’라면, ‘나의 그리스식 웨딩(My Big Fat Greek Wedding)’은 꼭 툴라같은 영화다. 위트있고 인간미 넘치고 따뜻하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금발에 오목조목한’ 백인 소녀들을 부러워하던 ‘거무튀튀하고 털 많은’ 소수 민족 툴라의 외모처럼 이 영화의 겉모습 역시 내세울 구석은 없다. 내로라할 스타는커녕 주인공은 니아 바르달로스라는 무명의 그리스계 여배우. 제작비는 미국 저예산 영화의 기준인 2000만 달러에도 한참 못 미치는 불과 500만달러짜리 초저예산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툴라의 매력을 알아본 이안같은 관객들을 만나면서 제작비의 48배인 2억4000만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엄청난 대박을 터트렸다. 이는 ‘미션 임파서블2’ ‘진주만’ 등 스타가 나오는 초대형 블록버스터의 흥행 수익을 능가하는 액수다. 블록버스터를 제치고 미 박스 오피스 톱10에 무려 38주간이나 버텼던 이 영화는 역대 로맨틱 코미디 사상 최대 흥행 기록을 세우며 ‘2002년 할리우드의 신화’로 꼽혔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이미 바르달로스를 주인공으로 한 TV시트콤 ‘나의 그리스식 인생(My Big Fat Greek Life)’이 만들어져 24일 첫 방영됐다.

그리스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툴라와 이안의 첫 만남. 한눈에 반한 이안을 쳐다보던 툴라는 이안의 친구가 ‘커피를 더 달라’고 하자 이안의 컵에 커피를 따라버린다.(위) ‘백인 사위’를 극구 반대했지만 결국 두 사람에게 손들고 만 툴라의 부모(아래).

●줄거리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툴라 포토칼로스는 가족이 운영하는 그리스 식당에서 웨이트레스로 일하는 서른살의 노처녀. 툴라의 아버지는 일본 전통의상인 ‘기모노’라는 단어의 어원 마저 그리스어 ‘히모나’에서 나왔다고 주장할 만큼 그리스 문화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미국 이민자다. 툴라는 백인 남자 이안 밀러 (존 코벳)와 일사천리로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리스 여자는 반드시 그리스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믿는 가족의 반대에 직면한다.

바르달로스가 클럽에서 진행한 1인 코미디쇼를 발전시켜 만든 영화답게 위트 있는 대사와 내레이션으로 96분 내내 유쾌한 웃음을 자아낸다. 가령 “남자는 집안의 머리”라는 말하는 아버지에 태도에 툴라가 불만을 품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남자는 머리지만 여자는 목이란다. 머리는 목이 돌리는대로 돌아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서로 다른 두 문화의 충돌’이 빚어내는 갖가지 해프닝을 따스한 시선으로 코믹하게 풀어낸 데 있다. 여기에 그리스계 예비 며느리를 앞에두고 ‘과테말라인 비서’ ‘아르메니아인 전화 교환원’을 떠올리는 이안의 부모의 모습에서는 미국내 소수 민족에 대한 백인의 시선도 슬쩍 꼬집는다.

이 영화는 크게 보면 미국의 주류 백인 문화와 소수 민족인 그리스 문화의 충돌이지만, 현대 핵가족과 전통적인 확장 가족의 삶도 대비되어 녹아있다. 이 영화가 ‘인종의 도가니’인 미국의 소수 민족에게 어필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이유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현모양처 어머니, 그리고 가족주의가 강한 그리스 가족문화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비슷해 한국 관객들도 즐겁게 볼 만 하다.

내일 네일을 따지지 않고 모여 늘 떠들썩한 툴라의 대가족을 원숭이 보듯 하던 이안의 부모와 예의와 격식을 깍듯이 차리는 이안의 부모를 ‘꿀 안바른 빵처럼 팍팍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던 툴라의 가족은 결국 아들과 딸을 통해 서로를 받아들이게 되고 하나가 된다.

정신없이 웃다가 보면 어느새 이 영화의 메시지에 도달한다.

툴라의 아버지는 결혼식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제 사위의 성(姓) ‘밀러’의 어원은 ‘사과’라는 뜻의 그리스말입니다. 우리 가문의 성인 포토칼로스는 오렌지라는 뜻의 포토칼리에서 나왔지요. 그러니까 이 자리엔 사과와 오렌지들이 모여있는 겁니다. 사과와 오렌지는 다르지만 결국은 모두 다 과일이죠.” 12세이상 관람가. 3월 14일 개봉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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