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이중간첩' 두 조국, 두 마음, 한 사랑…

  • 입력 2003년 1월 21일 17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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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가 돌아왔다. 4년만에 한석규가 관객과 다시 만날 ‘이중간첩’은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던 8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삼아 한 인물의 비극적 삶을 그렸다. 사진제공 쿠앤필름

한석규가 돌아왔다. 4년만에 한석규가 관객과 다시 만날 ‘이중간첩’은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던 8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삼아 한 인물의 비극적 삶을 그렸다. 사진제공 쿠앤필름

남북 분단을 소재로 한 대작 영화의 계보가 ‘쉬리’이후 ‘공동경비구역 JSA’를 거쳐 ‘이중간첩’에 이르렀다.

23일 개봉될 ‘이중간첩’은 ‘흥행 제조기’라 불렸던 배우 한석규가 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다는 것만으로도 비상한 관심을 불러모았던 영화다.

‘쉬리’가 남북분단을 상업영화의 소재로 끌어들이는 데에 성공했고 ‘공동경비구역 JSA’가 체제의 이질성을 넘어서는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이중간첩’은 분단의 비극이 야기하는 폭력의 현대사에 초점을 맞췄다.

1980년, 독일 동베를린 주재 북한대사관에 근무하던 정보요원 림병호 (한석규)가 남한에 귀순한다. 첩보활동을 위해 위장 귀순자인 그는 북파 공작원 훈련업무를 맡게 되고, 2년 뒤 남한 정보부에서 정식 채용돼 북한 정보 분석 업무를 담당한다. 그는 고정간첩인 라디오 DJ 윤수미 (고소영)를 통해 북한의 지령을 받으며 활동하는데, 위기상황이 점점 조여오면서 남, 북 모두에게 의심받는 상황에 처한다.

제작비 45억원을 들여 만든 이 영화는 코미디 혹은 과거를 미화하는 복고가 지배하는 요즘 한국영화의 흐름에 정면으로 거스른다. 극적 감동을 위한 작위적 설정을 분단을 넘어서는 화해의 길을 제시하려는 시도를 배제한 채, 폭력으로 일그러진 현대사를 사실에 가깝게 다루는 정공법을 택했다.

남한의 정보부는 림병호의 귀순동기를 캐기 위해를 대중 앞에 공개하기 전 “왜 내려왔느냐”를 캐물으며 혹독하게 고문하고, ‘남한의 품’에 받아들여진 그의 첫 업무는 북파 공작원 교육이다.

또 남한 정보부에서 정보 1국장으로 승진한 간부는 가까스로 체포한 고정간첩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이 자해로 의식불명 상태가 되자 “이대로 묻어두긴 아깝다”며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조작한다. 남북 상호의 첩보전, 체제 수호의 명목으로 정보부가 저지른 조작을 영화가 정면으로 다룬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이야기의 구조에는 억지스러움이 없고 화면도 안정감이 있다.

그러나 ‘이중간첩’은 별 매력이 없는 모범생처럼, 희한하게도 감정의 격랑을 느끼기 어려운 영화다.

제목이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는 탓에 제목의 뉘앙스를 뛰어넘는 긴장과 스릴이 마련되어야 하지만, 이 영화에는 기본 뼈대 이상의 곁가지나 반전이 없어 밋밋하다.

비극적 상황에서 삶의 이중성을 견뎌내야 하는 림병호의 외줄 타기 하는 듯한 심정, 지구상에서 그의 처지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인 윤수미의 감정은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이끌어들일 수 있는 감정의 도화선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모든 감정의 이입을 한석규의 잦은 클로즈업에만 의존한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한석규는 그가 늘 그러했듯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지만, ‘쉬리’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아 스테레오 타입에 갇혔다는 느낌을 준다. 고정간첩 역을 맡은 고소영은 장점이 많은 배우이지만, 이 영화를 통해 잘못된 캐스팅의 사례로 남을 듯하다.

‘쉬리’에서 가장 마음이 울컥한 장면은 연인을 배신해야 하는 북한 여전사가 남긴 마지막 음성 메시지였다. ‘이중간첩’의 림병호도 남한의 아버지같은 존재인 정보부의 백단장 (천호진)을 배신하며 마지막 편지를 남기지만, 별다른 울림을 남기지 못한다. ‘에이, 저럴 리가…’하면서 머리가 배신해도 마음은 움직여야 하는 게 영화라면, ‘이중간첩’은 그런 면에서 실패했다. 감독은 신인인 김현정. 15세이상 관람가.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 김봉석 (영화평론가)

기본은 갖춘 영화이고 소재의 사실성, 폭로의 수위는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문제의식이 너무 낡았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1960년)과 다를 게 별로 없다. ‘광장’의 시대로부터 한참 흘러왔는데도 말이다. ★★★☆

● 김소희 (〃)

‘쉬리’의 연장선 상에 놓여있는데 더 보수적으로 느껴진다. 현재의 남북관계 기류에 비춰볼 때도 좀 생뚱맞게 보이는 영화다. 한석규 스스로 ‘국민배우’의 자의식을 갖고 이 영화를 선택한 게 아닐까 싶다. ★★★☆

● 전찬일 (〃)

시대의 아픔을 정면으로 다룬 시도는 좋다. 그러나 영화는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인데, 이 영화는 주제의 무게에 짓눌려 버렸다. 대중영화인데도 관객을 끌어들여 함께 느끼게 하는 데에 미숙하다. ★★

● 주유신 (〃)

‘공동경비구역 JSA’의 성과를 넘어서지 못했다. 구성상으로도 멜로와 첩보가 잘 섞이지 못했고, 소재의 비극성을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했다. 한석규나 시나리오 보다, 감독의 연출력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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