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영웅'은 …진시황 암살하려는 자객들 이야기

  • 입력 2003년 1월 15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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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적 배경은 2200여년 전 전국 7웅이 할거하던 중국 춘추전국시대다. 천하를 통일해 나중에 진시황이 되는 진나라의 왕 영정과 그를 암살하려는 전설적 자객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전설적 무예를 보유한 자객 파검(량자오웨이), 비설(장만위), 장천(도니 옌)에게 거의 암살당할 뻔한 뒤 진나라 왕은 누구든 100보 안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자객들의 목에 현상금을 건다. 어느 날, 지방의 한 미천한 장수 무명(리롄제)이 세 자객을 물리쳤다며 왕을 찾아온다.

마치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처럼 ‘영웅’에서는 한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이 교차된다. 무명이 어떻게 세 자객을 해치웠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던 왕은 그의 말이 거짓임을 눈치챈다. 왕은 자신이 추리한 관계를 이야기하고, 무명은 다시 실제로 있었던 일을 다른 맥락에서 이야기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강렬한 색감. 무명의 이야기와 왕의 이야기, 실제 있었던 일이 차례로 펼쳐지는 동안, 화면은 붉은 색, 청색, 흰색의 톤으로 바뀌며 시각적 이미지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물방울을 가르는 칼의 동작까지 잡아낸 액션 장면들도 기존 무협영화들에서는 보지 못한 종류의 장면들이다. 호수 위를 날며 파검과 무명이 벌이는 결투는 아름답다고밖에 할 수 없는 명장면.

그러나 극심한 과장, 스토리의 정교함이나 인물의 개별성이 과다한 양식미에 파묻혀버린 점, 선문답 같으면서도 여운이 전혀 없는 대사 등은 이 영화에 찬사를 보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무명과 비설이 춤추는 듯한 동작으로 비오듯 쏟아지는 진나라의 화살을 막아내는 장면은 그저 ‘대륙적 허풍’처럼 느껴져 실소만 나오게 한다. 인생을 관조하는 현자의 이야기같은 ‘와호장룡’과 달리, ‘영웅’을 보고 나면 한껏 과장된 무협지 한 편을 해치우고 난 기분이 된다. 그렇다고 입이 절로 벌어지는 환상적인 액션 장면들까지 평가절하할 수는 없으니, 결국 문제는 영화 속에서 ‘서예와 검법의 비법을 푸는 길’을 설명하는 대사처럼 ‘그것들을 어떻게 보는가에 달려 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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