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파리에 간 한국의 스크린쿼터

  • 입력 2002년 2월 21일 16시 17분


한국의 스크린쿼터제가 영화와 예술의 본고장인 프랑스와 유럽의 벤치 마킹 대상으로 떠올랐다.

20일 프랑스 파리의 하원의사당 별관. 하원의 문화 가족 사회 위원회가 개최한 프랑스와 유럽 영화의 미래 세미나에서 한국의 정병국(鄭柄國·한나라당) 의원은 ‘한국의 영화정책과 스크린 쿼터 시스템’ 이란 제목의 발표로 좌중의 관심을 모았다.

이날 세미나는 지난 해 12월 프랑스 하원내에 설치된 ‘프랑스와 유럽 영화에 대한 정보조사단’ 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 세계 영화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의 무차별 문화 침공에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있는 유럽 영화의 자구책 강구였다. 이날 세미나에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관련 국회의원들이 대거 참석한 것은 이 때문.

한국 대표단이 이 자리에 초청된 것은 한국의 스크린 쿼터 제도가 세계적인 성공 사례로 인정됐다는 뜻. 프랑스와 유럽에 한국이 문화 자존심 지키기 노하우를 가르치러 온 셈이다.

정의원은 통시통역으로 진행된 발표에서 “한국영화의 관객 점유율은 2000년에 35.5%, 2001년에 46.1%를 기록했다” 며 “이같은 발전은 다른 국가들과는 차별되는 스크린 쿼터 제도가 있었기 때문” 이라고 서두를 꺼냈다.

그는 “한국은 영화진흥법에 따라 365일 가운데 최소 106일에서 최대 146일까지 한국영화의 유통 배급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며 “한국의 스크린 쿼터 제도는 미국이 자국 시장에서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해 채택하고 있는 반독점법과 같은 것이다. 국수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의 다양성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고 강조했다.

정의원이 문화의 종 다양성 보호를 위한 세계문화기구 구성, 한 국가에서 특정국가(미국)의 영상물이 40∼50% 이상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는 반독점 협약 체결 등을 제안하자 세미나 장에는 박수 갈채가 터졌다.

정의원의 발표가 이처럼 관심을 끈 데는 할리우드 영화에 상처받은 유럽영화 산업의 자존심이 깔려 있다. 프랑스를 제외하면 유럽 각국의 자국영화 시장 점유율은 10% 내외에 불과하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유일하게 스크린 쿼터제를 도입했지만 아직도 자국 영화 점유율이 10%대. 한 때 세계 영화의 정상을 구가했던 이탈리아도 영화 제작비의 최고 90%까지 지원하고 있으나 자국 영화 점유율이 15% 정도.

프랑스는 TV 방송 수입과 영화 티켓 판매액의 영화 제작비 의무 할당, TV 방송의 자국영화 쿼터제 실시 등 온갖 보호장치로 지난 해 자국 영화 점유율 41%를 기록, 문화대국의 자존심을 지켰다. 오죽하면 세미나 장에서도 “이런 지원이라면 프랑스 영화사는 망할 수가 없다” 는 말이 나올 정도.

이런 유럽의 눈에 별다른 제작 지원 없이 제도적 뒷받침으로는 거의 스크린 쿼터제 하나만으로 50%에 육박하는 자국 영화 점유율을 차지한 한국 영화가 경이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세미나 후반부에 참석한 카트린 타스카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한국 영화의 괄목한 만한 성장에 찬사를 보낸다” 고 말했다.

장 르 갸레 문화 가족 사회 소위원장 등 유럽 의원들은 할리우드의 영화에 대해 유럽 내부는 물론 한국과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김홍준교수는 “이번 세미나는 미국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세계화에 대해 새로운 대안의 모델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 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파리=박제균기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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