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쁜 남자’ 진짜 나쁜가?

  • 입력 2002년 1월 10일 11시 40분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이 확정된 김기덕 감독의 영화 ‘나쁜 남자’ 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이 영화는 깡패가 첫 눈에 반한 여대생을 창녀로 만들어 차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성계는 이 영화와 김기덕 감독에 대해 안티 운동까지 벌일 조짐이다. 영화 나쁜 남자 제작사가 개설한 홈페이지에는 영화 개봉 전(개봉 날짜는 11일)인데도 논란을 벌이는 네티즌의 글이 1000여건 올라와 있다.

“이런 영화에는 단 하나의 별점도 줄 수 없다” 고 비판하는 영화평론가 주유신씨와, “몸과 마음의 합일 가능성을 탐색한 영화” 라고 평가하는 영화평론가 김시무씨의 주장을 함께 싣는다.》

▼영화 줄거리▼

사창가의 깡패 한기는 우연히 마주친 여대생 선화에게 반하지만 싸늘한 대접을 받는다. 한기는 홧김에 선화에게 강제로 키스해버린다.

선화로부터 당한 모욕에 화가 난 한기는 계략을 꾸며 선화를 창녀로 만든다. 한기는 유리를 통해 점점 창녀로 전락해 가는 선화를 훔쳐본다.

절망과 치욕에 길들여진 선화는 조금씩 한기에게 사랑과 증오가 뒤섞인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트럭을 타고 사창가를 떠나 ‘이동 매춘’ 을 시작한다. 한기는 자신의 여자 인 선화를 다른 남자에게 팔고, 이런 기묘한 관계속에서 두 사람은 어느새 하나가 돼 있다.

▼주유신 "나쁜 영화다" ▼

최근 한국 영화는 여성의 육체와 심리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훼손함으로써 여성에게서 자아 및 자율성, 자기 존중감을 박탈하고 있다. 그 극단에 바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 특히 ‘나쁜 남자’ 가 존재한다.

‘나쁜 남자’ 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등장하는 것 때문에 나쁘다 고는 보지 않는다. 중요한 문제는 그 폭력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며, 결국은 어떤 정치적 효과를 갖는가 다.

김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나쁜 남자 에서도 밑바닥 인생 을 사는 아웃사이더 남성의 분노는 여성에게 집중된다. 협박, 구타, 강간 등을 포함해 그녀에 대한 폭력적 지배는 그에게 보상과 치유, 자기 확증을 가져주면서 나쁜 남자의 ‘자기 완성’ 과 평범한 여성의 ‘자기 절멸’ 의 이야기를 반복한다.

영화에서 남성의 우월성과 힘은 오로지 남성이라는 사실, 즉 ‘페니스’ 에서 나올 뿐이다. 즉 이 영화에는 현실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페니스 파시즘’ 이 ‘예술’ 이라는 이름으로 소통되고 있는 셈이다.

‘운명’ 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는 ‘나쁜 남자’ 속의 ‘기이한 사랑’ 은 아주 교묘한 메시지를 반복하고 있다. 그 메시지는 바로 여성의 성의 본질은 ‘창녀’ 라는 역할에서 구현되고 여성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 구원된다는 것이다. 또 그런 모든 과정이 한 여성에 대한 한 남성의 깊은 이해와 사랑의 구현이라는 메시지도 관객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달리말해 이 영화는 여성에 대해 어떤 성찰도 없는, 한 남성의 무책임한 사회적 배설 행위일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영화가 존재하고 소통된다는 사실 자체가 여성에 대한 위협이고 어떤 이유에서든 이 영화를 지지하는 행위는 여성들에 대한 모욕일 뿐이다.

▼김시무 "좋은 영화다"▼

김기덕 감독은 만드는 영화마다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흔치 않은 감독이다.

지금까지 김기덕의 영화들은 모두 한결같이 여성을 ‘창녀’ 또는 거의 창녀처럼 묘사하는데 문제점이 있다고 평자들은 입을 모은다.

물론 처음부터 창녀가 아니다하더라도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여자는 어느덧 창녀로 변해간다. 그래서 아예 창녀촌의 풍경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인 ‘나쁜 남자’ 가 제작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이미 비평적 예단(豫斷)은 정해졌다. 또 ‘여성창녀론이냐’ 고.

나는 여주인공을 창녀로 설정했다는 것 자체가 비판의 표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문제는 소재 자체가 아니라 그 소재를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이기 때문이다.

여성 주인공을 창녀 캐릭터로 설정했다고 해서 작품의 품위가 떨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소재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작품의 미학적 완성도와 하등 관련이 없다.

에밀 졸라의 ‘나나’ 도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 도 일단 소재는 창녀였다. 이와 동렬에 놓을 수는 없겠지만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 도 소재주의에 함몰되지 않았다. 창녀를 단순히 소재로 삼는 선정성의 차원을 넘어섰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영화를 소재적 측면해서만 바라본다면 아무 것도 얻어낼 게 없다. 요컨대 김기덕 감독은 ‘파란대문’ 에서 ‘섬’ 을 거쳐 ‘나쁜 남자’ 로 이어지는 이른바 창녀 삼부작 을 통해 매매춘에 대한 인류학적 내지는 사회학적 보고서를 쓸 의도는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감독은 ‘플라토닉 러브’ 라는 거창한 관념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는 몸과 몸의 부대낌 속에서 몸과 마음의 합일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진실하고도 지독한 사랑의 가능성을. 그렇다면 이는 역설적으로 소재의 승화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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