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충무로 '감독 브랜드 시대'…줄줄이 개인영화사 설립

  • 입력 2001년 11월 19일 18시 05분


한국 영화가 전성기를 맞으면서 영화감독의 전성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유명 영화감독은 이제 그 이름 만으로 고정 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감독의 ‘브랜드 가치’만 믿고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이 늘고 있는 것. 유명 감독은 스타 배우 못지 않은 ‘귀하신 몸’인 셈이다.

이에 따라 스타 감독을 입도선매하기 위해 전속 계약을 맺는 영화사가 등장하는 한편, ‘스타 감독’들은 자신의 ‘상품성’을 앞세워 직접 영화사를 차리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충무로 전성시대 연 스타감독들

올해에만 10여명에 가까운 ‘스타 감독’이 영화사를 차렸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 이름을 ‘브랜드’로 내세워 수십억원의 투자를 쉽게 유치할 수 있을 만큼 흥행작을 낳았고 아울러 높은 지명도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의 잇딴 성공으로 ‘흥행 감독’의 반열에 올라선 김상진 감독은 얼마전 ‘감독의 방’이라는 영화사를 차렸다. ‘킬러들의 수다’로 흥행성을 인정받은 장진 감독도 최근 영화기획 제작사 ‘수다’를 만들었다.

‘친구’가 한국 영화 사상 초유의 대박을 터트리면서 스타로 떠오른 곽경택 감독도 최근 ‘진인사 필름’을 차렸다. 곽감독은 차기 작품인 ‘챔피언’을 이곳에서 촬영중이다.

‘눈물’을 만든 한지승 감독도 올해초 영화사 ‘시선’을 공동 설립했다. 한 감독은 현재 국내 최초의 패러디 영화인 ‘재밌는 영화’의 제작에 들어갔다. ‘태양은 없다’ ‘무사’등을 통해 고정팬을 확보한 김성수 감독도 최근 영화사 ‘나비’의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

●왜 감독이 영화사를 만드나

제작자의 간섭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작품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제작자나 투자자의 간섭을 받다 보면 스토리 구성이나 배우 캐스팅부터 맘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경제적으로는 ‘대박’이 터질 경우 수입이 수십배 차이가 난다는 이유도 있다. 특히 대박에 따른 추가 수입을 보장받기 어려울 경우 감독이 스스로 회사를 만들어 영화를 제작하면 훨씬 더 큰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것.

●가중되는 감독난

유명 감독들이 직접 영화사를 차리면서 기존 영화사들은 ‘스타 감독’을 모시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졌다. 문화관광부 영상진흥과에 따르면 현재 신고된 영화제작사의 수는 800여개. 반면 감독협회에 등록된 감독의 수는 270여명이다. 이중에서도 ‘검증된 감독’은 기껏 20,30명에 불과한 실정이어서 영화사 입장에서는 배우는 고사하고 ‘감독 캐스팅’조차 쉽지 않다.

●스타 감독을 잡아라

감독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제작자들은 유명 감독들과 평소에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 애를 쓴다. 이를 위해 감독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기도 한다. 영화계가 아직 ‘도제식’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어 평소의 친분 관계나 인연이 좋은 감독과 작품을 확보하는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시네마서비스의 강우석 대표와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는 영화계 인사들과의 두터운 친분과 인맥으로 ‘패밀리’를 거느리는 대표적인 제작자로 꼽힌다. 싸이더스는 허진호(‘봄날은 간다’), 봉준호(‘플란더스의 개’), 노효정(‘인디안 썸머’), 김태균(‘화산고’) 감독 등을 확보하고 지난 2, 3년간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김상진, 장윤현, 한지승, 장진 감독은 독립한 뒤에도 시네마서비스의 투자와 배급을 받으며 ‘강우석 사단’으로 분류된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유명 감독과 일종의 ‘전속 계약’을 맺은 영화사까지 등장했다. 지난달 출범한 ‘에그필름’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찬욱,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내 마음의 풍금’의 이영재, ‘휴머니스트’의 이무영, 그리고 ‘흑수선’의 배창호 감독 등과 억대의 계약금을 지불하고 향후 5, 6년간 2∼3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계약을 맺었다.

에그필름의 지영준대표는 “영화는 감독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내 영화계에서는 감독의 비중이 배우나 기획자보다 소홀하게 여겨져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 감독이 영화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감독 전성시대의 명과 암

스타 감독들이 직접 영화사를 차리자 제작사들이 캐스팅이 쉬운 신인 감독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씨네월드의 이준익사장은 “신인 감독은 충무로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저변을 확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한 영화제작자는 “영화에 전념해야할 감독들이 회사를 가지면 경영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어 작품 활동이 어려울 것”이라며 “한 두편 흥행에 성공한 젊은 감독들의 성급한 독립은 한국 영화의 발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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