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한국화가 임효展, 먹선따라 피어나는 仙界의 정취

  • 입력 2001년 8월 28일 18시 16분


투박하고 힘이 있으면서도 단아한 먹 선이 지나간 자리에는 푸른 빛 감도는 신비스런 산들이 정겹게 둘러싸고, 산 속에는 초록의 소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하늘과 땅에는 온통 붉은 꽃과 갈색 꽃들이 만발해 꽃향기가 진동하는 듯 하다. 그 한 가운데 정자 안에서 두 신선이 뭔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국화가 임효 씨(46)가 서울 인사동 선화랑 초대전에 전시하는 그림속 풍경이다. 전시기간은 9월5∼18일.

그의 그림에는 깊은 산 속에 꽃잎이 비처럼 내리거나 높은 곳에서 폭포수가 힘차게 떨어지기도 한다.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 뛰어들고 싶은 선경(仙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신 몽유도원도(新 夢遊桃園圖)’란 별칭이 따라붙는다.

자세히 살펴보면 화면 밑바탕은 부분적으로 붉은 빛을 보이기도 하고 연갈색을 띠기도 한다. 이는 화가가 직접 한지를 제작하기 때문. 화가는 희멀건 죽 같은 전통 한지의 펄프를 소목(蘇木·연보라색 물감) 치자(노랑) 갈물(갈색) 쪽물(파랑) 등 전통 염료로 염색해 5mm 두께의 질박하고 두터운 한지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그에게 한지 뜨기는 그림 완성의 절반쯤으로 여겨진다.

화가는 이렇게 만든 한지 위에 먹으로 형태를 그려 넣는다. 그는 “먹과 만났을 때 전통 한지의 색도 더욱 빛을 발한다”고 말했다.

먹으로만 그려 칙칙할 경우에는 푸른빛이 나는 보석가루(암채)를 아교와 섞어 발라 화면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대개 동양화의 경우 흰 여백으로 처리하는 공간에 그는 꽃을 그려 넣는 ‘솜씨’도 부렸다.

꿈속에나 있을 법한 비경을 그린다고 해서 현실에 있지도 않은 사물을 그린 것은 아니다. 이번 작품을 위해 그는 2년 동안 전국의 정자들을 찾아다니며 여러 풍경들을 보고 감흥을 스케치했으며, 이를 화폭에 재구성했다.

이 같은 작업은 한지를 두껍게 만들어 부조화시키고 거기에 색의 번짐 효과를 거두었던 2년 전 전시 때의 작업과는 많이 다르다. 그는 “이번 작업은 한지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우리의 색을 찾아 나선 시도”라고 설명했다.

전시되는 그림은 200호 대작부터 2, 3호 소품에 이르기까지 40여 점. 그 중에는 여름계곡의 폭포소리 매미소리 등을 형상화한 ‘여름소리’ 등도 포함돼 있어 이채롭다. 그는 “앞으로는 소리를 형상화하는 작업에 전념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02-734-0458, 5839

<윤정국기자>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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