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TV읽기]MBC '미디어 비평'의 구부러진 잣대

  • 입력 2001년 7월 18일 18시 44분


민주사회란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사회다. 공존할 뿐만 아니라 서로 충돌하고 조정하며 합의점을 모색해 가는 사회다. 다양한 의견들이 대의를 얻기 위해 명분과 실력을 쌓고, 도덕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그 사회는 비로소 성숙한 사회로 발전한다.

언론의 자유가 민주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 여러 색깔과 모양의 언론이 그래서 필요하고, 그들 언론은 사주나 정부, 광고주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신들의 의견을 펼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요즘 부르짖는 편집권의 독립이 바로 그것이다.

신문의 편집권이 사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비판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방송이, 스스로 나서서 신문의 다양한 논조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건, 자가당착의 오류일 뿐 아니라 언론의 자유에 대한 도전이다. 회사 주식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족벌사주도, 하늘같은 국가권력도 터치할 수 없다는 신문의 논조를 방송이 무슨 자격으로 비판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난주 토요일 ‘MBC 미디어비평’은 황장엽씨 방미와 관련된 각 신문들의 다양한 논조를 비평의 도마 위에 올렸다. ‘미디어 비평’은 각 신문들의 사설에 밑줄을 긋고 읽어 내려간 후, ‘과연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하고 있을까요?’ 라고 반문했다. 그러다가 모 신문을 언급하는 순서에 이르러서는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드시지 않습니까?’ 라고 시청자의 판단을 유도하기도 했다. 결국 이 코너는 ‘특정 신문의 보도태도가 아쉬운 점으로 남았던 한 주였다’는 코멘트로 마무리했다.

각 신문의 논조를 비교, 분석하는 것은 교육적인 차원에서 도움이 된다. 그러나 논조는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견해의 문제’이다. 따라서 논조를 놓고 진실 운운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또 황장엽씨를 미국에 보내야 한다고 믿는 A라는 신문이 있고,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믿는 B라는 신문이 있는 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특정 언론의 논조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MBC 역시 우리나라의 수많은 언론 중 하나일 따름이다.

그런 다양한 언론을 가질 수 있다는 건 국민의 입장에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모든 언론이 일사불란하게 한가지 주장을 한다면, 민주사회로서의 투명성과 건강지수를 의심해 봐야 한다. 그런 다양한 논조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미디어 비평’ 제작진의 언론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나는 ‘미디어 비평’ 같은 프로그램이 현재 세간의 관심 속에 진행 중인 언론개혁이 제 궤도를 잡는데 도움을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려면 언론개혁을 악용하려는 각종 술수부터 걸러 낼 식견이 있어야 한다. 언론의 부당한 경영 실태와 언론 사주의 권력 남용 등을 열심히 캐내어 신문업계에 경종을 울리되, 일부 신문을 밉게 보는 정부와 눈높이를 맞추거나, 자사의 논조(만약 논조가 있다면)로 사태를 호도하지 말아야 한다. 언론개혁으로 반사적 이익을 보려는 집단도 아울러 경계해야 한다.

비판의 소재도 가려서 선정해야 한다. 신문업계는 비판의 성역이 아니지만, 신문의 논조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언론자유의 영역에 속한다. 논조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부당한 간섭을 우리는 언론탄압이라고 부른다.

박성희<이화여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 shpark1@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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