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드라마<아줌마>가 남긴 것과 놓친 것

  • 입력 2001년 3월 21일 13시 46분


<아줌마>가 지난 20일 막을 내렸다.

삶의 즐거움을 한껏 느끼는 오삼숙과 인생의 거품이 빠진 장진구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카메라가 오삼숙의 생기 넘치는 표정을 정지화면으로 잡으면서 끝이 났다.

마지막 회의 전국 시청률은 29.1%.

30%대에 육박하는 시청률이면 성공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지만 화제를 모은 드라마들이 마지막에 절정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점을 감안하면 아주 높은 수치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아줌마>는 단순한 시청률 성적 이상의 의미와 파장을 남겼다. 그동안 이런 류의 드라마들은 늘 결론에 이르러 사회적 영향을 감안한 ‘최선의 선택’을 했다.

‘가족의 평화가 최우선’이라는 가족제일주의의 시각과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유교적인 애정관을 바탕으로 다시 손을 마주잡는 해피 엔딩이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아줌마>는 그런 정상적인 과정이 아닌 파격을 택했다.

‘당당한 이혼과 가장의 처참한 몰락’. 물론 처음부터 드라마가 이런 결말을 가지고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제작진의 당초 의도는 무난한 화해와 해피 엔딩이었다.

하지만 드라마의 가장 큰 시청자들이 ‘가정으로 돌아와 행복한 척’하는 오삼숙을 용납하지 못했다. 드라마 시청자들 중 가장 수동적인, 보여주면 보여주는데로 그대로 본다던 ‘아줌마 시청자’는 현모양처로 복귀하려는 오삼숙의 발을 잡았다.

드라마 <아줌마>가 남긴 의미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시청자 집단이면서도 변변한 자기 주장 한번 내지 못한 채 신세대 자녀와 가장의 틈바구니에서 채널 선택권마저 마음 편하게 갖지 못했던 ‘아줌마 시청자’들의 당당한 요구는 극중 오삼숙의 ‘독립’만큼이나 신선했다.

<아줌마>의 표면적인 결론은 드라마를 이끄는 두 축, 오삼숙과 장진구의 달라진 삶을 대조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이 드라마에서 작가가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오히려 한지원과 박재하 커플의 모습에서 더 잘 드러났다.

장진구 못지않은 속물 근성과 허위의식의 소유자 한지원과 전형적인 ‘룸펜 지식인’ 박재하는 막판에 이르러 주부와 가장의 역할을 맞바꾸는 선택을 했다. 여기까지는 그동안 이 드라마가 보여준 파격을 감안할 때 무난한 수순이다.

하지만 정작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 회에 쌍둥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두 사람이 보여주는 태도이다.

아이 치다꺼리 하면서 살림 하느라 정신없는 박재하와 직장이 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가정에서 편안한 휴식을 원하는 한지원은 끈임없이 충돌을 한다.

곤하게 자다 아이 때문에 깬 한지원에게 박재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대화좀 하자니까. 하루종일 이렇게 살림만 하다가 끝나고, 우리 사이의 사랑이 식은거야.”라며 그는 주부 우울증을 호소한다.

그러나 피곤에 지친 한지원은 그런 박재하의 푸념을 이해하기 보다는 단지 자신이 집에서 평화롭게 쉴 수 있는 소중한 여가마저 깨졌다는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인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부부간의 대화 단절과 소외로 위기에 처한 주부의 모습을 그릴 때 거의 상투적으로 등장하던 장면이다. 불만과 몰이해의 주체가 뒤바뀌었다는 것만 빼 놓고는 “사랑이 식은거야”라며 한탄하는 대사투까지 똑같다.

드라마 작가 정성주는 한지원-박재하 커플을 통해 그동안 페미니즘을 표방한 드라마가 보여준 ‘여성 피해자-남성 가해자’라는 단순 공식에서 벗어나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데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필요하고, 그것은 그럴듯한 구호나 선언이 아닌 참으로 힘든 실천의 과정이 동반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 점에서 <아줌마>는 일부에서 주장하듯 가족의 해체와 여성의 일방적인 독립만을 외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사회에 걸맞는 건강하고 평등한 부부관계를 강조하는 드라마이다.

다만 그 덕목을 엄숙하고 현학적인 투로 말하기 보다는, 어깨에 힘을 빼고 이웃과 수다를 떨 듯 편하게 설명했을 뿐이다.

물론 많은 장점과 긍정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아줌마>가 아쉬운 점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가장 큰 아쉬움은 그동안 이 드라마의 차별적인 강점으로 부각됐던 ‘지식인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끝까지 웃음을 주는 장치에서 머물고 말았다는 점이다.

장진구를 필두로 오일권, 한지원 박재하 등 드라마에 등장한 소위 ‘식자’들은 머리 속에 죽은 지식만 가득하고,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강한 가치관은 결여된 모습이었다.

작가와 연출자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지식인 그룹인 대학 교수들을 다른 어느 드라마보다 혹독하게 조롱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장진구의 덜 떨어진 모습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먹물들에 대한 풍자’를 활용하다 보니, 드라마에서 오삼숙의 독립 못지않게 중요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엉거주춤한 결말로 끝을 맺었다.

애초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으면 모를까, ‘세상 사는데 도움이 안되는 사람들’이란 식으로 조소를 했으면 어떤 형식으로든 결론을 내렸어야 했다. 장진구가 재임용에서 떨어지고, 오일권이 구속이 되는 사건은 오히려 드라마가 그동안 보여준 ‘건강한 현실감’에 비해 ‘인과응보’식의 윤리적 당위성만을 강조한 비현실적인 결말이 되고 말았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이 드라마가 가족을 이루는 중요한 주체중 하나인 아이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흔히 이혼을 결심할 때 가장 크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자녀라고 한다. 그런데 <아줌마>는 오삼숙의 갈등과 독립, 장진구의 대책없는 방황에만 초점을 맞추었을뿐, 그들의 이혼에서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두 아이들에 대한 시각은 너무 안이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오삼숙과 장진구의 두 아들, 훈이와 견이는 도대체 10년 넘게 살아온 부모가 이혼을 한다며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난장판 집구석의 아이들 같지가 않다.

집을 나가는 어머니의 상황을 이해하는 모습이나, 어머니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파는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가 인생을 살아도 한참 산 어른들의 모습이다.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항의를 하지도 않고, 부모에 대한 반항으로 일탈행동을 벌이지도 않는다.

다른 부분에서는 인물 묘사가 그렇게 정확한 작가와 연출자가 왜 아이들은 이렇게 무책임하게 다루었을까?

솔직히 <아줌마>를 보면서 내내 들었던 유일한 불만은 이 드라마의 아이들이 실제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라기 보다는 이혼을 원하는 어른들이 ‘기대하고 바라는’ 자녀들의 모습에 더 가까웠다는 점이었다.

많은 이야기거리와 화제, 논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아줌마>는 끝이 났다. 흔히 가장 흔한 드라마 소재가 가족과 부부라지만, 이제야 가식없이 솔직하게 이 시대를 사는 가족 구성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첫 물꼬를 텃다는 점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아줌마>의 최고 덕목이 아닐까?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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