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하사극 준비한 방송 3사, 고민도 많아

  • 입력 2001년 2월 22일 16시 11분


SBS <여인천하>
"사극에 대한 고민도 3사(社)3색(色)"

오는 상반기 잇달아 대형 사극을 선보이는 방송3사들이 요즘 말못할 고민에 시달리고 있다. <용의 눈물>부터 <왕과 비> <태조왕건>에 이르기까지 발표하는 대하 사극마다 시청률 정상을 기록했던 KBS는 다른 드라마는 몰라도 사극에 있어서는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자부해 왔다.

KBS는 <태조 왕건>이 끝나는 오는 4월 야심작 <명성황후>를 내놓을 예정. 대원군 역은 일찌감치 유동근으로 정해 놓았으나 정작 주인공인 명성황후 역을 맡을 연기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 이영애를 유력한 후보에 올려놓았지만, 본인이 영화 스케줄을 이유로 고사를 하고 있다.

이영애는 KBS 박권상 사장이 "최적의 인물"로 지목한 만큼 KBS가 어떤 대우를 하더라도 그녀를 캐스팅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영애의 거절도 완강하다.

방송가 일부에서는 사극 경험이 별로 없는 그녀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부담이 많은 대하 사극의 주인공을, 그것도 상대역이 베테랑 유동근인 상황에서 쉽게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카리스마와 미모, 연기력을 두루 갖추어야 하는 명성황후역에 마땅한 다른 후보도 많지 않은 상태. 다른 드라마보다 준비가 오래 걸리는 사극의 특성을 감안하면 최소한 3월 초까지는 배역이 결정돼야 하나 현재로는 불투명하다.

KBS 입장에서는 SBS와 캐스팅 경쟁을 했던 강수연이나, <왕과 비> 이후 관계가 소원해진 채시라가 아쉬운 상황이다.

KBS와의 경쟁에서 파격적인 대우를 앞세워 강수연을 캐스팅하는데 성공한 SBS는 <여인천하>가 부진했던 드라마의 활력소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기대했던 '엔돌핀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여인천하>는 TNS미디어코리아 조사에서 13∼17%의 시청률을 기록해 아직 기대했던 붐이 일지 않고 있다. 제작진이나 방송사 간부들은 "아직 아역이 등장하는 초반이라 그렇다"며 태연해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여유있는 편이 못된다.

무엇보다 같은 시간대 편성된 MBC <아줌마>의 연장 방영이 결정돼 3월 중순까지는 시청자의 관심을 끌어오기가 쉽지 않은 상황.

특히 꾸준히 사극을 제작해온 KBS와 달리 조명, 야외촬영, 의상, 가발, 분장 등 제작 각 분야의 취약한 '인프라'가 드라마 초반부터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용의 눈물> <왕과 비> 등의 사극을 통해 화려한 사극 의상에 눈이 맞춰진 시청자 입장에서 <여인천하>의 복식은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드라마 초반부에 시청자의 관심을 끌 인물이 없다는 것도 약점. <용의 눈물>의 경우 정도전이 초반부에 시청자의 관심을 끌었고, <태조 왕건>에서는 궁예의 카리스마가 인기의 상승세를 주도했다.

하지만 <여인천하>에서는 강수연이 등장하기 전까지 시청자가 눈길을 둘 인물이 마땅치 않다. 표독한 이미지로 돌변한 도지원이 있지만, 그녀 혼자서 드라마의 재미를 주도하기엔 역부족이란 평가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앞으로 강수연이 등장해도 당분간 그녀 혼자 '악전고투'하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될 수도 있다.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다른 방송사에 비해 MBC는 '젊은 감각의 사극'이란 컨셉트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줌마> 후속으로 3월말께 방송하는 <홍국영>은 영·정조 시대를 풍미한 풍운아 홍국영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남성적인 선이 굵은 사극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KBS의 대하 사극과 비슷하고, 시간대에서는 SBS의 <여인천하>와 정면으로 부딪친다.

화려한 스타 중심으로 배역을 정한 다른 사극과 달리 <홍국영>에는 주인공 정웅인을 비롯해 김상경, 정소영, 이태란 등이 출연한다.

모두 사극 경험이 전혀 없는 젊은 연기자들. 드라마의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기존 사극의 틀에 박힌 연기에서 벗어난 신선함'으로 승부할 복안이다. MBC는 내친 김에 매주 월화 밤 10시대는 사극 시간대로 특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재 <홍국영>의 뒤를 이어 <다모> <상도> 등의 작품이 준비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극에 비해 시청자의 관심을 유도할 '얼굴마담'이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걸리는 부분이다. 주인공인 정웅인이나 김상경 모두 이런 큰 작품에서 주연을 맡아본 경험이 전혀 없다. 과연 그들이 회당 500만원의 출연료를 받는 강수연이나 <명성황후>에서 대원군을 맡은 유동근처럼 강인한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또 과거 MBC가 의욕적으로 방송을 시작했다가 조기종영한 <대왕의 길>이 <홍국영>과 마찬가지로 영·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도 신경 쓰이는 대목. 이미 드라마로 한번 실패했던 시대를 다시 다룬다는 것이 어떤 징크스로 작용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모처럼 '사극 전성시대'를 맞았다는 방송3사가 과연 이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할지 그 결과에 따라 사극의 성패가 엇갈릴 전망이다.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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