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배꼽조심', EBS 인기 강사 민속학자 주강현

  • 입력 2001년 1월 30일 18시 49분


29일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케이블TV 스튜디오.

“인문학자답게 고상한 얘기나 해야 하는데, 기왕 ‘ㅈ’자에 ‘ㅈ’자 받침 들어가는 말까지 다 해버린 마당에 이번에는 ‘똥같은 얘기’를 좀 해야겠어요.”

라임색 셔츠, 가는 줄무늬가 들어간 회색 양복을 세련되게 차려입은 민속학자 주강현(46)이 칠판에다가 강의 주제를 적었다. ‘똥돼지’.

29일 밤 첫 방영된 EBS의 <주강현의 우리 문화>(월∼목 밤 10시50분) 녹화현장. 김용옥, 임동창, 김홍경에 이어 ‘스타강사’의 바통을 이어받은 그는 거침없이 말을 쏟아낸다.

프랑스 구조주의학자 레비 스트로스부터, ‘이재수의 난’까지 동서를 넘나들며 똥돼지의 민속생태학적 의미를 설명했다.

능청스런 반말투와 편집에서 잘려나갈 ‘비방용어’(방송에서 나갈 수 없는 비속어)도 서슴치않는 입담 때문에 100여명의 방청객은 수시로 폭소를 터뜨렸다. 정부가 하루빨리 각 시 군에 ‘국립똥자원연구소’를 설립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카메라맨부터 PD까지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큭큭댔다.

녹화를 마치고 그와 마주앉았다. 그의 명함에는 우리민속문화연구소장, 문화재 전문위원 등 대여섯개의 직함이 가득 써 있었다. 3월부터는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북한문화학을 강의한다.

25만부 가까이 팔려나간 스테디셀러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과 더불어 ‘인문학으로 뜬 몇 안되는 스타’로 꼽힌다.

“20여년간을 민속문화 연구에만 매달렸어요. 이번 방송도 그렇고. 방송에서는 딱딱한 인문학적 얘기 대신 쉽고 재미있는 민속문화를 말하려고 해요.”

16편으로 예정된 이번 방송강의에서 그는 ‘성문화’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 ‘개고기’ ‘간통’ 등 생활과 밀접한 풍습에 대해 다룰 생각이다.

80년대 초 운동권이었던 그는 경희대에서 제적당하고 한 때 노동운동을 했다. 후에 경희대 대학원에서 석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사책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았던 민속문화가 궁금해 20년간 발로 뛰면서 매달렸다. 덕분에 ‘씌어지지 않았던 문화’는 그로 인해 하나씩 둘씩 ‘씌여졌다’.

그는 “꼭 ‘www’가 앞에 나와야만 벤처인가요? 문화도 벤처에요. 전통 식혜가 깡통에 담겨 콜라와 당당히 맞서는 상품이 됐듯 우리 민속문화에 좀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민속학은 아직도 대학에 학과조차 변변히 없는 실정입니다.”

그 역시 ‘성공한 벤처’다. 민속학이 돈이 안된다는 통념과는 달리 그는 인세와 방송출연 등으로 “상당한 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 돈으로 일산 정발산 기슭에 민속문화연구소를 지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만큼 앞으로는 민속학을 연구할 제자 양성과 북한문화 탐구에 집중할 계획.

그가 즐겨쓰는 말은 법고창신(法古創新). 연암 박지원의 글에서 끌어온 이 말은 오늘날 ‘민속문화’를 어떻게 되살릴 것인지에 대한 그의 해답이다.

“예전 것을 본받은 자가 너무 옛 것에만 집착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자는 규범을 따르지 않음이 우려되니, 진실로 능히 옛것을 본받으면서 변화할 줄 알고, 새 것을 만들면서 능히 규범을 따를 줄 안다면 오늘의 글이 예전의 글과 같으랴….”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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