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창사특집 자연다큐 ‘한국의…’ 박쥐의 생태신비 담아

  • 입력 1999년 11월 2일 19시 48분


연초 방송가는 박쥐 때문에 한바탕 소동을 겪은 적이 있었다. EBS가 한국환경생태계연구협회와 함께 전남 함평군 인근 동굴에서 동면 중인 세계적인 희귀종 ‘붉은박쥐’(일명 ‘황금박쥐’)를 촬영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후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지만 당시 학계에서는 “죽는다”와 “별 상관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고, 제작진은 “천신만고 끝에 촬영한 죄 밖에 없다”며 하소연했다.

그만큼 박쥐는 서식지가 은밀한데다 신경이 예민해 자연 다큐멘터리 PD에게는 촬영하기 어려운 동물로 꼽힌다.

SBS가 9∼10일 방송하는 창사특집 2부작 자연다큐 ‘한국의 박쥐’(밤 10·55)는 이런 논란을 의식해 레이저 카메라, 내시경 카메라, 체온 감지카메라 등 특수 장비를 동원해 잠자는 박쥐 등을 있는 그대로 촬영했다.

EBS와는 경우가 다르지만 SBS 제작진도 1년간 온갖 고생을 감내해야 했다. 이들은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 120여개의 동굴과 폐광은 물론 전국의 온갖 사찰을 누비고 다녔다.

제작진이 촬영한 장면은 다양하고 의미있는 것이 많다. 우선 토끼박쥐 평남졸망박쥐 등 좀처럼 사람 눈에 띄지 않는 희귀종 9종을 카메라에 담는 데 성공했다.

5개월 동안 ‘죽은 듯이’ 자는 박쥐의 겨울잠이 있고, 교미 후 만들어지는 자연 정조대 ‘질정’의 모습도 있다. 새끼 중 한 마리만 남고 나머지는 도태되는 처절한 생존경쟁도 있고, 박쥐들이 내는 초음파를 사람의 귀에 들리는 음으로 바꿨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음이 되는 신기한 장면도 있다.

제작진은 마치 ‘호기심 천국’을 연상케 하는 문답풀이식으로 프로를 꾸미기도 했다.

제작진은 박쥐의 생태를 통해 인간의 환경파괴도 고발한다. 연출을 맡은 서유정PD는 “대부분의 박쥐에게서 검출되는 납의 평균농도가 치명적인 수치”라며 “이는 박쥐가 인간에게 동굴을 뺏기면서 폐광으로 쫓겨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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