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 영화에 담긴 세기말적 심리

  • 입력 1999년 8월 26일 19시 55분


세기말의 영화들은 바야흐로 ‘섹스’라는 최종 기착지를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듯하다.

올해 베니스영화제 출품작들과 국내에 상영 중인 성 소재의 영화들은 세기말에 범람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인간 정체성의 혼란을 성으로 표현한다.

이 영화들은 어느 때보다 표현수위는 높아졌지만 말초적인 에로티시즘과는 거리가 멀다.

감독들은 주인공의 성적 방황을 통해 순수한 에너지 덩어리인 ‘리비도’가 관습과 금기의 그물망을 터뜨리며 어떻게 사회적인 것으로 바뀌는지를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사실 이런 영화들이 다루고 있는 소재는 성에 대한 충만감이 아니라 불륜 혼음 성병 매춘과 같은 것들이 대부분.

여기에는 금기의 파괴와 일탈의 욕망이 내재돼 있다. 일탈과 금기 파괴의 마지막은 죽음이다.

그래서 영화들은 죽음의 에너지, 즉 ‘타나토스’와 연관된 성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한다.

이는 세기말의 물질적 풍요로움과 테크놀로지의 진보가 더이상 인간 관계에서 진정성을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적 가치조차 물건의 가치로 판단하는 요즘, 감독들은 손익분기점을 초월해버린 극단에 섹스를 올려놓는다.

인간의 가치를 재화를 재는 저울로 판단하는, 인간의 물화(物化)를 저지하는 유일한 비상구로 섹스를 선택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오직 성을 통해서만 보장되는 은밀한 밀폐감으로 자신이 남과 다름을 확인한다.

그래서 더욱 외로워보인다.

결국 관음증을 포기한 영화는 체제 전복과 금기 파괴의 코드를 성에 집어넣음으로써 인간관계와 존재에 관한 성찰을 몸으로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기말, 영화는 바야흐로 의사소통 불능의 세계를 ‘성’으로 돌파하는 중이다.

심영섭(영화평론가·임상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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