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찜」,관객 15만 돌파…황기성씨 아이디어「적중」

  • 입력 1998년 6월 2일 19시 29분


‘환갑 청년’과 여장(女裝) 남자. 개봉 보름만에 서울서만 15만 관객을 모은 영화 ‘찜’의 실질적 주인공(황기성사장)과 실제 주인공(안재욱)의 별칭이다.

39년생인 황사장은 자신의 영화사 황기성사단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젊은 기획자’다.

영화계가 워낙 노후화가 빠르기 때문에 여기서 나이 60은 다른 동네의 80에 해당할 정도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찜’도 직접 아이디어를 냈고 그 전에 히트친 ‘고스트 맘마’ ‘닥터 봉’도 모두 황사장의 머리에서 나왔다.

“내가 원래 젊은 사람들을 좋아하거든요. 주말이면 대학로에 나가 젊은이들 춤추고 노는 걸 봐요. 젊음을 보면 사회흐름이 보이지요.”

70, 80년대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어둠의 자식들’ ‘고래사냥’ ‘성공시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등 시대를 읽어내는, 기라성같은 영화들도 그의 머리와 손을 거쳤다. 젊은이들의 편에 서서 그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성감대’를 건드리면 화제작이 나왔다. 사회에 대한 불만, 최루성 멜로를 거쳐 로맨틱 코미디까지.

‘찜’도 이런 과정을 통해 나왔다. 사회적 이슈가 사라진 시대, 학력과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혼기를 놓치는 젊은 여성들, 연상의 나이 정도는 사랑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믿는 젊은 청년들…. 여기에 IMF상황에 지친 관객들이 지금쯤은 부담없이 웃을 수 있는 영화를 원할 것이라는 시간계산. 그래서 사랑때문에 여장까지 할 수 있는 남자이야기를 떠올리고 이에 가장 잘 어울릴 만한 배우로 안재욱을 ‘찜했다’.

“한지승감독이 건네준 시나리오에 ‘재욱이네 집’식으로 써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누가 해도 나만큼은 못할거다, 이 영화는 무조건 된다는 자신감이 들었죠.”

안재욱의 말. 보수적이고 직선적인 성격 탓에 ‘여자답다’는 말은 꿈에서도 들어본 일이 없지만 “여장을 하면서 뜻밖에 내 안의 여성성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됐다”고 했다. 새초롬하게 아래로 눈을 깔고 사람을 쳐다보는 시선이라든지, 요염한 매력이 넘치는 손놀림 등은 대본에도 없는 안재욱의 창작.

덕분에 제작비 14억원을 들인 이 영화는 벌써 손익분기점을 넘어 흥행대열에 들어섰다. IMF상황이라지만 황사장은 겁나지 않는다. ‘살려고 하면 죽는다, 그러나 죽으려 하면 산다’가 그의 좌우명. 그래서 더욱 공격적으로 영화를 제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남들이 상업영화라 하든 말든, 대중의 행복에 기여하는 영화를.

〈김순덕기자〉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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